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인 『스티브 잡스』를 읽었다.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잡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 인성은 쓰레기지만 미친 듯이 강렬한 이 남자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다.
그는 기업가이지만 동시에 예술가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의 롤모델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회사와 제품들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부심이 있었다.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대하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독후감을 정말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책에 있는 내용을 복사 붙여넣기 하듯이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잡스에 내면을 더 자세히 파고들기 위해 『선심초심』, 『어느 요기의 자서전』, 『바가바드 기타』도 읽었다. 『선심초심』은 잡스를 선(禪) 불교의 길로 이끈 책, 『어느 요기의 자서전』은 그의 아이패드에 유일하게 저장되어 있던 책이자 그가 평생 동안 매년 읽었다고 하는 책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가장 널리 읽히는 힌두 경전이다. (힌두 경전은 여러 권이 있다.) 그는 대학 시절 기타에 등장하는 신인 크리슈나를 숭배하는 크리슈나교 사원을 종종 찾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난 후 쓰다 말았던 독후감을 다시 쓰려고 했으나 그동안 책 내용 일부를 까먹어버렸다.
그냥 책의 일부를 인용하고, 느낀 점 몇 가지를 끄적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었던 건 '그냥 독후감'이 아니라 '작품'이었다. 중요한 내용을 모두 인용하고 싶었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모든 말을 전하고 싶었고, 책의 목차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모든 내용을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연결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모든 걸 끝내고 난 뒤 결과물을 보며 와, 정말 멋지다. 이런 작품은 다시는 만들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책을 다시 읽어야 했다.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을.
그리고 중요한 내용을 하나도 빼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짧게 압축해야 했다.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내용을.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 같았다. 그만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대답은 "NO".
이미 그 내용들은 내 의식 또는 무의식에 있다. 그것들이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 단지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줄 뿐인' 일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잡스에 대한 더 깊고 풍부한 사전 지식을 갖춘 뒤 다시 읽으니 1회독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너무나 많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사소한 디테일까지 온전히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잡스와 레오나르도는 항상 완벽을 열망했다. ('다 빈치'는 빈치 출신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아니다.)
레오나르도는 대개 동시에 여러 작업을 진행했으며, 그의 완벽주의 때문에 완성한 작품보다 미완성으로 둔 작품이 훨씬 많다.
잡스는 확신이 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맹렬한 열정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그는 타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대개 무시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차일피일 미뤘다.
그런 성향은 집에 가구가 없는 것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 문제로, 심지어 자신을 죽이게 될 암에 대한 수술을 미루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그의 성향에서 비롯했다. 사람이든 제품이든 최고거나 쓰레기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애매하거나 실패할 일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독후감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내가 원하는 기간 내에 완성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작성 중인 부분까지는 적당히 마무리하여 발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책을 다시 읽으면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메모 목적'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전기를 먼저 읽을지 잡스 전기 2회독을 먼저 할지는 고민 중.
요즘 잡스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했더니 좀 질려서 아마 전자를 먼저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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