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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스티브 잡스가 선(禪)불교에 빠진 이유"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간결하다. 명료하다. 아름답다.
300 페이지도 안 되는 책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생텍쥐페리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핵심 메시지도 정말 간결하고 단원별로 하고자 하는 말들도 명확하고 정말 뺄 것이 없는 아름다운 책이다.
저자인 스즈키 순류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그는 1959년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히피 문화가 한창이었던 60년대 미국에 선불교를 전파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당시 순류의 사상에 빠졌던 히피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스티브 잡스다.
잡스를 선(禪)의 길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이 책, 『선심초심』이다. 그가 평생 스승으로 모셨던 승려 오토가와 고분은 순류의 제자였다. 잡스는 순류의 제자의 제자인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명상(좌선)을 실천했으며 승려의 길을 걸을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고분의 만류로 그는 기업가가 되었다.
이 책은 순류가 직접 쓴 건 아니고 그의 설법을 제자들이 엮어서 출간한 것이다.
선심초심 (禪心初心)
제목인 선심초심에서 선심(禪心)은 선불교를 말한다. 초심(初心)은 습관에 물들지 않음, 비어 있음을 말한다. 이는 선(禪)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비어 있기에 모든 것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이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일단 좌선을 해라.
좌선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하지 않음'을 하는 것이다.
이득을 얻으려는 생각 없이, 무엇을 할 때 그저 그것을 하는 것, 이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서 깨어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핸드폰을 보거나 잡생각을 한다. 먹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딴 데로 가 있다.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의 맛과 식감을 느끼며 그저 '먹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으며, 하고 있는 행동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이 책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단원은 '자세', 그다음 단원은 '호흡'이다.
자세와 호흡을 의식하는 것은 깨어 있기 위한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의식적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순류의 선(禪)은 특별하다. 그가 말하는 좌선은 그저 앉아서 깨어 있는 것, 그것이 전부다.
좌선은 언제나 깨어있기 위한 연습, 무언가를 할 때 그저 그것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하는 것, 해탈을 위한 것 등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순류는 이렇게 말한다.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고 그저 좌선을 해라. 그는 불교의 철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좌선에는 그 어떤 이유도, 비밀도, 특별함도 없다. 그냥 앉아라. 그리고 깨어있으라.
선심(禪心)과 초심(初心), 그리고 깨어있음을 통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난다. 주위에 너무 무관심하지도 않고,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도 않고,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외부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며 '진정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좌선을 하면 안 된다. 이는 100번을 강조해도 모자라다.
그저 앉아라. 근심걱정이 너무 많아서 생각을 비우기 힘들 수도 있다. 망념이 떠올라도 그것을 무시하거나 쫓아내려 하지 말고, '이건 망념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얼마 안 가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을, 그리고 자기 자신 또한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자신의 생각조차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마라.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하려 하고, 무언가를 얻으려 애쓴다. 그러나 결과가 아니라, 그 노력 자체가 우리의 진정한 본성의 표현이다.
결과를 얻기 위해서 애쓴다면, 힘만 들 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올바르게 인식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애쓰든지 간에, 그 노력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진정한 본성에 기초하게 될 것이며, 성취를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백만장자가 되는 것과 백만장자는 못 되더라도 조금씩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인생을 향유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 성공하는 것과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좌선을 하면 안 된다.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른다면 좌선을 하는 것조차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13세기에 조동종(선불교의 종파)을 일본에 전파한 도겐은 이렇게 말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깨달음이 어떤 특별한 무언가라는 생각을 버려라. 깨달음에 대한 집착 자체가 깨달음을 방해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다.
선은 어떤 흥분상태가 아닙니다. 매일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순류가 불교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보다 일단 좌선을 하는 것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종교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요,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 책은 깨달음을 원하는 자에게 아주 쉽고 명확한 수행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한 경지에 대한 기대 없이, 목적 없이, 그저 앉아서, 생각을 비우고, 바른 자세로, 호흡을 알아차리며, 깨어있으라.
순류는 개구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개구리는 마치 자는 듯 전혀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지만, 또렷이 깨어 있다. 벌레가 지나가면 언제라도 번개 같은 속도로 혀를 뻗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의사소통
추가로 책에서 말하는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감정에 솔직하지 않고, 친하지 않은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에 여기에 남겨둬야겠다.
타인의 말을 들을 때는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과 같은 모든 선입견과 주관을 포기하고 그저 들으면서 말과 행동을 관찰해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려라. 타인의 말에 자신의 생각이 개입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견해를 다시 상기하는 것이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표현을 할 때는 자신의 느낌과 마음에 솔직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어떤 식으로든 조절한다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
특히, 자신의 기분에 있어서 더더욱 솔직해야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군더더기 설명 없이 "죄송해요, 제가 지금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없다면 최선의 방법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차선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침묵이 최선인 경우도 많다. 순류는 선 수행을 시작하고 실제로 말수가 적어졌다고 한다.
좌선을 통해 위와 같은 의사소통 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할 말 못 할 말 다하는 쓰레기가 된 건가?)
그러나 선은 어떤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선의 가르침은 '그저 살라'는 것이다. 항상 실재 속에서, 매 순간순간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매 순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부처님 말씀조차 배울 수 없다.
진정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은 얼마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느냐, 얼마나 자신에게 솔직하냐에 달려 있다.
불교와 힌두교의 철학
이 책은 당연하게도 불교의 철학 또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에 관심 없던 사람이 그 뜻을 바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를 얼마 전에 읽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힌두교와 불교는 같은 고대 인도 출신이라 디테일만 다르지 세계관이 매우 비슷하고, 철학도 비슷하다.
(종교도 종파마다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힌두교 =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 불교 = 조종동 선불교를 말한다.)
1.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 나의 본질이 세상의 본질이고 세상의 본질이 나의 본질이요,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다.
- 힌두교: 모든 생명의 본질은 아트만(굳이 따지면 '영혼'과 비슷한 개념?)이며, 각각 자신의 아트만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껍데기인 육체가 없어져도 아트만은 언제나 그대로이며 새로운 육체로 윤회한다. 또한 그 아트만은 우주의 근본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동일하다.
- 불교: 우리에게는 이미 불성이 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체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구나!"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모두 부처의 활동이다. 깨달음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2. 집착 없는 행위 강조: 단순히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행하고 있지만 행하고 있지 않은, 어떤 의도도 없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인 '무행위'의 개념이 핵심이다.
- 힌두교: 욕망과 집착,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 '완전한 천성에서 나오는', '의무'를 행할 것
- 불교: '진정한 본성에서 나오는', '해야 할 일'을 행할 것
3. 수행 방법: 힌두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수행이 명상이다. 명상과 좌선은 가부좌를 틀고 하는 자세도 비슷하고, 수행 중 아무 생각 하지 말라는 것도 비슷하다.
핵심적인 부분만 비교해 봤지만 이외에도 정말 비슷한 점이 많다.
스티브 잡스와 선(禪)
위에서 말했듯이 잡스는 평생 동안 명상(좌선)을 했으며 승려의 길을 걸을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을 정도로 깊게 빠졌다. 동양 철학을 탐구하고 스승을 찾기 위해 인도에 오랫동안 머물기도 했다.
잡스는 명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잠재우려 애쓰면 더욱더 산란해질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현재의 순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게 느껴집니다. 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밝은 눈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수양이며,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직관의 힘을 믿었으며 IT 기업가 답지 않게 실제로 많은 일들을 논리가 아닌 직관을 발휘하여 처리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을 사용하지 않지요. 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심초심』 외에도 그가 사랑했던 종교서적으로 『어느 요기의 자서전』이 있다.
선심초심에서는 '좌선', 어느 요기의 자서전에서는 '크리야 요가' 수행을 강조한다. 이 둘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종교를 초월한 수행'이라는 것이다.
- 인격신을 믿지 않아도 괜찮다.
- 세속적인 삶을 살면서도 수행할 수 있다.
- 그 철학체계를 이해하는 것보다 일단 수행을 시작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점에 잡스가 매료된 것이 아닐까 한다. 신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수행이기 때문에 이미 믿는 다른 종교가 있더라도 괜찮다. 실제로 두 책 모두에서 다른 종교를 믿어도 상관없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있다.
잡스는 『어느 요기의 자서전』을 매년 읽었다고 하는데 둘 다 읽어본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선심초심』 쪽이 매년 읽어야 할 책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엄청 짧아서 솔직히 한 달에 한 번도 가능하다. 스티브 잡스 전기 작가가 잘못 쓴 거 아닐까? 아니면 이미 다 외워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던 것일 수도?
아무튼 정말 좋은 책이다. 모두 다 같이 『선심초심』을 읽고 좌선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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