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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독후감

『스티브 잡스』 - 학창 시절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게 된 이유

사진의 얼굴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AI 모델을 학습시켜 보려고 했다. 그런데 시작하려고 뭐가 필요한지 이것저것 검토해 보니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돈이 들었고, 무엇보다 가장 막막했던 것은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하고 전처리하는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결국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모니터만 쳐다보며 멍 때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늘 그랬듯이 '머스크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명확했다. 그는 그 일이 얼마나 하고 싶은지, 비용(시간, 돈, 에너지)이 얼마나 드는지, 실행했을 경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고려해서 빠르게 결정했을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뭐라도 결과물을 내고 싶다는 조급함에,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어딘가에 써먹어야 한다는 마음에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니 그 과정이 신나지 않았던 건 당연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만약 하고 싶지만 확률이 낮고 리스크가 큰 일, 하기 싫지만 내가 잘할 수 있고 리턴이 큰일이 있다면 어떤 쪽을 결정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결정할까? 

 

머스크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결정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제1원칙 사고를 통해 논리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내 천성은 아니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100달러 지폐 속 인물, 신에게서 번개를 훔친 벤자민 프랭클린이었다. 

 

프랭클린은 머스크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면서 그의 전기는 머스크가 추천한 도서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랭클린 전기는 절판된 도서이며 근처 도서관에는 없었기에 대신 머스크, 프랭클린 전기의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다룬 인물 중 하나인 스티브 잡스로 결정했다.

 

  

내가 잡스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가 애플의 공동창업자이며 아이폰을 만들었고 인성이 쓰레기라는 것. 이 3가지가 전부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이 미친 듯이 강렬한 남자의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될 줄은. 그는 어떤 점에서 머스크와 정 반대에 있지만 어떤 점은 비슷하다. 이 매력적인 남자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방할 수 있지만,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서문이 나오기도 전에 스티브 잡스 작고 10주기 헌사에 나오는 이 문장이다.

 

사람의 좋은 특성과 나쁜 특성은 종종 이중나선처럼 얽히고 설킨다.

 

사람에게는 빛과 어둠이 있다. 그는 어둠이 매우 짙은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더 밝게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도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지금은 사람들을 로켓에 태워 화성으로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일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다음은 잡스가 실제로 했던 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한 가지 간단한 사실을 발견하면 삶은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주변의 모든 것이 당신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바꿀 수 있고,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당신만의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당신은 다시는 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가

엔지니어에 가까운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들과 달리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에 가깝다. 애플 초기에도 기술적인 부분은 모두 워즈니악이 도맡아 했다.

 

잡스의 롤모델 중 한 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둘의 창의적 천재성은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에 서라"는 같은 교훈에서 기인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다 빈치'는 빈치 출신이라는 뜻으로, 성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다. 그 당시에는 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동명이인은 출신 지역으로 구분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다빈치'라고 부르지만, 외국에서는 '레오나르도'라고 부른다. 잔다르크 또한 이름이 아니라 '잔 드 아르크'를 줄인 것으로, 아르크 출신의 잔이라는 뜻이다. 외국에서는 '조앤' 또는 '잔'으로 부른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 철학은 애플의 DNA에 내재해 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결과를 내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과학기술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직업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에 종종 사용한 표지판 사진

 

잡스는 회사의 제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했고 애플과 애플의 제품에 대해 엄청난 애착과 자부심을 가졌다. 그의 인생 목표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으며 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것, 그것이 최고의 동기부여라 할 수 있지요.

 

그들이 추구한 2가지 중요한 가치가 있었으니...

 

완벽주의

잡스는 레오나르도의 완벽을 향한 열정에 감탄했다. 그는 앙기아리 전투에서는 원근법이, 동방박사의 경배에서는 상호작용이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자 완벽성이 떨어지는 채로 작품을 완성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완성작보다 미완성작이 훨씬 많다.

 

애플의 폐쇄성과 end-to-end 통합 문화는 잡스의 완벽주의에서 기인한다.

잡스는 고집 센 엘리트주의 예술가이며, 자신의 창작물이 형편없는 프로그래머들에게 제멋대로 수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누군가가 피카소 그림에 붓질을 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초의 맥부터 최신의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잡스의 시스템은 소비자들이 만지작거리고 수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늘 굳게 닫혀있었다.

 

둘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완벽을 기했다. 잡스는 아무도 볼 일이 없는 내부 회로기판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매킨토시의 출시를 보류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 (이미 사람들이 뜯어보지 못하도록 꽁꽁 싸맸는데도 말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며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버지 폴 잡스의 철칙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밤에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열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릴 박스나 패키지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50번이 넘는 수정을 거쳤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잡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마침내 디자인이 완성되었을 때, 그는 제도용지 한 장과 펜을 꺼내 모두가 이름을 쓰게 했다. 그들의 서명은 모든 매킨토시 내부에 새겨질 것이었다. 아무도 볼 일이 없겠지만, 팀원들은 모두 자신의 서명이 컴퓨터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았다. 서랍장 뒤쪽에 아름다운 나무가 있음을, 회로 기판이 최대한 아름답게 설계되었음을 알듯이 말이다. 팀의 일원이었던 앳킨슨은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런 순간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작품을 예술로 보도록 한 겁니다.

 

단순함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잡스는 언제나 적을수록 많은 것이고, 단순할수록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플의 진가는 사실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에서 나왔다.  

 

누군가가 포브스닷컴에 아이패드와 관련된 일화를 기고했다. 그는 시골 지역의 어느 낙농장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가 아이패드로 소설을 읽고 있는데 여섯 살짜리 소년이 다가왔다. 그는 호기심에 소년에게 아이패드를 건네주었다. 소년은 컴퓨터도 본 적이 없었지만 아이패드의 화면을 밀고 앱들을 작동해 보더니 핀볼 게임을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잡스는 여섯 살짜리 문맹 소년도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컴퓨터를 설계했다. 그것이 마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것이 막힘없이 단순하고 매끄럽게 작동된다는 것은 언제나 애플 제품의 큰 강점이었다.

단순함은 결코 미니멀리즘의 결과이거나 잡다한 것의 삭제가 아니에요. 진정으로 단순하기 위해서는 매우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

 

 

잡스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우드사이드의 저택에는 정말로 최소한의 가구만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미칠 듯이 좋아하는 물건이 아니면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후 아내와 아이가 살 새 집에는 가구가 많이 필요했는데, 잡스에게는 가구 하나하나를 고르는 것이 고역이었다.

 

우드사이드 저택


입양아, 학창 시절

잡스의 양부모(이하 양부모는 수식 없이 '부모'로 표기)는 그가 입양아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대신에 잡스가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가 부모님에게 진짜 부모는 자기를 버린 것이냐고 물었을 때, 부모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

 

그런데 잡스는 정말로 특별했다. 그는 점점 자라면서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부모님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으며,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한다. 부모님도 그의 특별함을 알고는 그를 특별한 아이로 대우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가 사고를 치고 다녀도 혼내지 않았고, 선생에게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들 잘못"이라고 했다.

 

잡스의 어린 시절에서 중요한 키워드 2가지는 독립성과 특별함이다.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종이기에 필연적으로 남의 눈치를 보게 되지만, 잡스는 어떤 거리낌도 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나는 그것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독립성, 그리고 자신이 특별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자신이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척받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것 아닐까? 

 

그는 천성적으로 권위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부모님은 일요일마다 그를 교회에 데려갔는데, 13살 때부터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으면서" 불쌍한 아이들을 돕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은 숭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자신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타인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 어떨지 대충 예상되지 않는가?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고집과 집념이 대단했다. 학교에서 종종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7학년 때 전학을 보내주지 않으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 당시 잡스네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잡스의 의지는 절대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기에 무리하여 좋은 학군으로 이사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아버지에게 걸려 심하게 혼났는데, 끝까지 마리화나를 다시 피우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의 아버지 폴 잡스는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유능한 엔지니어였으며 그의 가족은 훗날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게 될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근처에는 열정적인 엔지니어들이 많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전자공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웃이었던 HP 엔지니어 래리 랭은 잡스를 HP 탐구자 클럽에 가입시켜 주었다. 그곳에 소속된 아이들은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며 잡스는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려면 HP가 만드는 부품 몇 개가 필요했다. 그는 곧장 마을 전화번호부에서 HP의 공동창업자 빌 휴렛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고, 휴렛은 잡스가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휴렛은 어린 잡스(고1)의 호기로움에 감명받아 여름 방학 동안 주파수 계수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것이 잡스가 사람을 홀리는 방식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필요한 부품들을 구했다.

 

HP(휴렛 패커드)의 공동창업자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

 

디자인에 있어서는 부동산 개발자 조셉 아이클러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회사는 서민들에게 심플하고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고자 했으며 캘리포니아 곳곳에 1만 채가 넘는 집을 세웠다. 훗날 잡스는 이에 착안하여 심플하고 우아한 디자인의 제품을 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이름이 같고 전자공학에 열정이 있으며 장난기가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로 잡스는 5살 연상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소개받았다. 훗날 그들은 휴렛과 패커드에 버금가는 최고의 콤비가 된다. 워즈니악은 전형적인 너드로,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은 잡스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야망이 없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왼쪽이 워즈니악, 오른쪽이 잡스

 

잡스네는 여전히 재정적 여유가 없었지만 그는 학비가 매우 비싼 학교 중 하나인 리드 대학이 아니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를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의지를 꺾기 위해 일부러 비싼 대학을 고집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짜 이유는 그곳이 히피 문화의 성지였기 때문이다. (70년대에 중퇴율이 1/3을 넘겼다.) 그는 "기차로 전국을 부랑자처럼 떠돌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막 도착한, 뿌리도 연고도 배경도 없는 고아처럼 보이고 싶어서" 부모님을 입학식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의 인생에 몇 안 되는 후회의 순간들 중 하나이다.

 

그는 그저 특별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특별함을 추구했다. 고아라는 정체성도 그를 평생 동안 따라다녔다.

 

그런데 한 학기 만에 대학을 중퇴했다. 그의 성격에 지루한 필수 과목들을 들어야 하는 게 싫었고, 학비도 부담스러웠다. 사실 필수 과목과 비싼 학비가 싫었을 뿐 대학을 다니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학과장을 설득해 자유로운 청강과 기숙사 이용을 허락받았다. 그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 훗날 학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매력적인 탐구 정신이 매우 돋보이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기계적으로 주입하는 진리를 거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기행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는 평생 동안 이어질 기이한 식생활을 시작했다. 오직 과일과 야채만 먹는 채식주의다. 심지어 몸을 정화하는 방법이라며 주기적으로 금식을 했고 몇 주 동안 같은 음식만 먹다가 갑자기 더 이상은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일쑤였다. 암 치료를 위해 입원했을 때는 오직 과일 스무디만 먹겠다고 고집을 부려 문제가 되었다. 또한 채식이 체취를 제거해 준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샤워도 안 하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녔다.

 

물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짓을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식습관은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 『디톡스 식습관의 치유 체계』 등 여러 영양학 서적을 읽으면서 형성되었다. 

 

잡스의 기행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상대를 응시하는 법, 길게 침묵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날카롭게 말을 쏟아내는 법을 '갈고닦았다'.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렀으며 항상 맨발로 다녔다. (일단 미친놈인 건 확실하다.)

 

이런 기행은 애플을 창업하고도 계속되었으며 중요한 자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플 II의 판권을 팔기 위한 아타리 사장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그는 아타리가 성공하기 전 초기 직원 중 한 명이었기에 사장과 면담할 수 있었다.) 그는 맨발이었으며 어느 순간부터 발을 올려놓기까지 했다. 당연히 협상은 결렬됐다.

 

책에서 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그의 기행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줄어든 듯하다. 정말 어이가 없었던 건 응시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을 평생 써먹었으며 그것이 잡스의 장기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의 눈을 응시하면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는 시선을 피하지 말고 답하라고 요구하곤 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잡스만 이상한 짓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덜했을지 몰라도 히피족 대부분이 기행을 일삼았다.

 

그는 대학 시절 절친인 대니얼 콧키와 함께 선(禪), LSD, 밥 딜런의 음악에 심취했다. 

LSD 복용에 대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두세 번째 안에 드는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얘기였다.

 

대니얼 콧키는 대학 시절 그의 절친이자 애플의 첫 번째 직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둘의 끝은 좋지 않았다. 애플이 IPO를 진행했을 때 그가 시급제 직원이라는 이유로 스톡옵션을 하나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친분이 있다거나 애플의 초창기를 함께 했다는 감상적인 이유로 지분을 주지는 않았다. 초창기 애플 엔지니어였던 앤디 허츠펠드는 잡스에 대해 "의리라는 단어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왼쪽) 대니얼 콧키, (오른쪽) 스티브 잡스

 

대학 시절 잡스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로버트 프리들랜드이다. 

 

어느 날 잡스는 자신의 IBM 타자기를 사기로 한 어떤 학생의 기숙사 방을 찾았다. 그가 방문했을 때 프리들랜드는 섹스를 하고 있었다... 잡스가 뒤돌아 나가려 하자 그는 잡스를 불러 세우고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는 2학년 때 LSD 소지로 실형을 살다가 나왔다. 그 후 리드 대학으로 편입하고 '누명으로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명목으로 학생회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도 동양 종교에 빠져 있었으며 구루를 만나기 위해 인도로 떠나기도 했다. 잡스에게 인도 여행을 권한 것도 프리들랜드이다. 돌아와서는 샌들에 로브를 걸치고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프리들랜드는 잡스의 성격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잡스는 다소 수줍음이 있고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프리들랜드를 만나고 물들었다고 콧키는 말한다. 잡스는 그에게 카리스마와 사기꾼 기질로 상황을 왜곡하고 주도하는 방법, 자신감이 넘치며 독재적인 성격, 스스로를 관심의 중심으로 만드는 방법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그의 성격은 훗날의 잡스와 거의 비슷했다. 

 

프리들랜드 또한 잡스의 기행과 불합리할 정도의 극단적인 열정에 매료되어 매우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나중에 사기꾼, 사이비 종교 지도자 같은 행태가 점점 심해지자 잡스는 그를 손절했다.

 

현재는 억만장자가 된 프리들랜드. 원래 금수저긴 했다.


여기까지도 사실 이 책의 극초반 내용이다. 너무 두꺼워서 다음 편은 나오기 힘들 듯함...

자세한 내용은 『스티브 잡스』의 독후감을 쓰려고 했지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