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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독후감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

벤자민 프랭클린은 누구인가?

  • 1706년, 식민지 미국 보스턴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남
  • 1718년, 형의 인쇄소에서 도제로 일하기 시작. 이 즈음부터 익명으로 사회 비판, 풍자를 시작함.
  • 1723년, 형과의 갈등으로 필라델피아로 도망
  • 1728년에 동업자와 인쇄소를 설립하고 1730년, 인쇄소의 단독 소유자가 됨
  • 1732년, 그 유명한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을 출간하여 돈과 명성을 얻음. 이 연감은 책 + 달력의 형태로, 재밌는 풍자와 실용적인 조언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와 같은 해당 연감의 격언들은 아직까지도 매우 유명한 것들이 많다.
  • 1737년, 필라델피아의 우체국장으로 임명
  • 1748년, 42세의 나이로 출판업에서 은퇴하고 과학 연구와 공공서비스에 집중
  • 은퇴 전후로 필라델피아 도서관, 소방대, 병원, 대학 설립 등 공공서비스 발전에 크게 기여
  • 1752년, 전기 연구를 바탕으로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인 피뢰침 발명. 이 일로 인해 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 됨
  • 1757 ~ 1775년,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인'으로서, 영국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적 활동을 함
  • 1776 ~ 1785년, 프랑스에서 미국 대표로 활동하며 미국의 독립에 기여
  • 1790년, 84세의 나이로 사망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4개 문서의 작성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인물이다.

  • 1776: 미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독립선언서
  • 1778: 프랑스와의 동맹 조약
  • 1783: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파리 조약
  • 1787: 미국 헌법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가장 위대한 미국인 5위로 선정되었다.


실용주의, 현실주의, 합리주의

놀랄 만큼 매우 꼼꼼하고 실용적인 사람.
그는 관심사가 매우 다양했고 이론보다는 철저히 실용적인 측면으로 접근했다.
 
시 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가끔 시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언어 감각을 갈고닦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
 
나는 이상주의에 많이 치우친 성향인데, 이 책을 읽고 실용주의적 가치관이 필요함을 느꼈다.
 
과학에 대해서도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이론적 정립보다는 새로 발견한 사실을 현실에 활용하는 데에 훨씬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은 그에게 일종의 취미였다. 그래서 과학의 1차적 목적은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풍선 따위가 무슨 쓸모가 있냐고 묻는 관중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갓 태어난 아기는 무슨 소용이 있죠?"
 
실용을 떠나서 호기심과 실험 정신은 천재들의 기본 소양인 것 같다.


근면, 성실, 검소

  • 근면성실의 아이콘
  • 결함은 대개 게으름에서 나온다.
  • 노력을 강조하는 정책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유 재산을 축적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복지와 노력하는 개개인의 존엄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 과도한 복지를 경계했다. 빈민들의 게으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다툼을 싫어했지만, 권위주의적인 사람들과 "내세울 것이 출신 성분 밖에 없는" 게으른 엘리트들을 혐오했다.
  • 그는 행복하고 부지런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 주류를 이루고, 그러한 중산 계급의 힘으로 나라가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평생 자신을 중산 계급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한때 인쇄공이었다고 들은 이 사람의 가치를 거의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가 깔보는 태도로 지적했듯이, 유럽에서는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로 성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바로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미지 메이킹

그는 실제로 근면성실한 것만큼이나 그렇게 보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비평가 조너선 야들리는 이렇게 평가했다. '계산된 목적을 위해 계산된 속도로 삶을 꾸리면서, 자기를 경영하고 의지를 중시하는 사람'
 
미국에서는 성실하게 보이도록 노력했지만, 노동을 천시하는 프랑스에서 지낼 때는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늙고 돈 많고 인기도 있고 해서 실제로 더 여유롭기는 했다. 어쨌든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지 메이킹을 잘했다는 것이다.)
 
이 책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은 일론 머스크의 추천 책이다. 읽으면서 머스크 전기의 어떤 내용이 생각났다. 
"현장에서 먹고 자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일종의 동기부여 쇼이기도 했다."


성격

  • 다정다감한 성격, 유머 감각, 여유로운 태도, 매우 사교적
  • 그럼에도 수다스럽지는 않음. 침묵을 잘 활용했다. 존 애덤스의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모두 유익한 내용이었다."
  • 다툼을 싫어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음흉하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었다.
  • 소박하고 검소
  • 그의 정적들 또한 그를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긍정적이고 따뜻한 태도는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 주변에 늘 사람들이 붐볐다. 쉽게 말해서 초인싸

커틀러 목사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나는 주제와 상관없이 그가 풀어놓는 광범위한 지식을 접하면서 몹시 즐거웠다.
그의 모든 정신적 특징 중에서 특히 탁월한 기억력과 명석함, 그리고 나이를 무색케 하는 쾌활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태도는 완벽한 여유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구속받지 않는 자유와 행복을 발산하는 듯 보였다.
그는 특유의 명랑한 성격과 더불어 유머 감각이 철철 흘러넘쳤다. 
그런 모습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순간적이었다.

 

  • 부드러우면서도 솔직하고, 대담하고, 절대 수줍어하지 않았다.
  • 자신의 주관과 신념이 확고했다.

이 부분은 대부분 위인들의 공통점인 듯. 나는 '이 우주에 옳고 그름은 없다.'라는 마인드로 살아서 호불호를 딱히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느낀 게, 넓게 포용하는 사람보다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다양한 의견을 포용한다는 것은 우유부단함으로 직결될 수 있다.


가족

'진짜' 가족에게 소홀한 걸로는 스티브 잡스와 겨룰 수 있을 정도.
정치적으로 정 반대의 입장이었던 아들과는 거의 절연했고, 외국에서 주로 지내게 된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아내를 자주 보지 않았다. (유럽에서 미국까지 몇 개월이 걸린다는 걸 감안하긴 해야겠지만)
 
성욕이 왕성해서 (본인도 인정한 부분) 첫 자식은 사생아였고, 아내와 결혼한 뒤에도 외교를 위해 여러 나라에서 오래 머물면서 각 나라에다가 대리 가족을 만들어 살았다. 특히 젊은 여자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매우 좋아했다. (대리 가족을 만든 여자들과 육체관계까지 갔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타입인 것 같다.
 
프랭클린의 격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을 알리되 완전히 알게 하지는 말라"
그는 누구와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마당발이었지만 동시에 누구와도 매우 깊은 관계는 맺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의 실용적 성격이 한몫했을 것이다. 당장 만날 수도 없는 사람을 생각해 봤자 마음만 아프지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풍자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가장 큰 무기가 풍자다. 그는 인생은 인쇄공으로 시작되었다.
주로 신문에 가명으로 편지를 써서 권력자들을 풍자했다. 언론을 이용한 그의 풍자는 평생 계속되었다.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를 꾸며내서 풍자하는 그의 방법은 현시대의 그것처럼 완전히 악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짜 뉴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가짜 뉴스를 퍼트려서 경쟁 인쇄소를 제쳤던 전적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짓궂고 빈정대기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사교술을 연마하면서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그러한 본능을 익명으로 해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종교

그는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실용주의자답게 영적인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종교 또한 자신만의 실용적 형태로 변형하여 믿었다.
 
그것은 이런 형태였다. 
하나님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기도를 한다고 해서 신이 개개인의 사소한 문제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선행을 하고 덕을 쌓는 것뿐이다.
 
그의 종교관은 약간 공리주의적 느낌이 있다.


조직

그는 집단을 조직하고 실용적으로 꾸려나가는 관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그러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평생토록 협력을 조직하고 공적 의도의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탁상공론을 하기보다는 실용적인 세부 사항을 구성하는 것이 주특기였으며, 매우 꼼꼼하고 사소한 디테일에 집착했다.
 
그가 만든 가장 유명한 문구 중 하나이다.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

 
프랭클린을 보면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하는 이기적 이타심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독립 전에도 펜실베이니아의 도서관, 소방대, 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미국의 독립과 연방의 탄생에도 크게 기여했다.
당시 대부분의 강대국들이 군주제였는데도 미국이 민주주의의 성격을 띤 데에는 프랭클린의 영향이 컸다.

그의 동기를 설명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얼마든지 있지만, 가장 큰 동기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는 열정이 있고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거의 죽을 때까지 일을 했는데, 일을 놓고 이제 쉬어야 할 때가 되었지만 야망과 욕심 때문에 놓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가 여러 좋은 일을 한 이유는 당연히 돈과 권력 때문도 있었다. (그는 돈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좋은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조직을 구성하고 관리하고 타협을 이끌어 내는 것에 자신이 재능이 있고 거기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도 일론 머스크가 생각났다. 
그가 타행성 이주를 실현하려는 표면적인 이유는 언젠가 일어날 전지구적 재앙에 미리 대비할 기술을 갖춰놓기 위함이다.
하지만 가장 큰 내적인 동기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합리적인 생물체는 매우 편리한 존재여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이유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낸다.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그것이 공공의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적, 공적 이익을 결합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랭클린이 만든 유명한 격언으로 마무리하겠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