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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독후감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월터 아이작슨

들어가기에 앞서: 한국에서는 레오나르도를 주로 '다빈치'라고 부른다. 하지만 15세기는 성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출신 지역이나 직업으로 동명이인을 구분했다. (예: 빈치 출신 레오나르도,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빈치 출신이라는 뜻으로, 성이나 이름이 아니다. (여담으로 잔다르크도 '아르크 출신의 잔'이라는 뜻이다.)

 

광적인 호기심

모든 천재들의 기초적인 임플란트인 호기심. 두려움은 레오나르도의 호기심을 막지 못했다. 

아인슈타인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네. 난 단지 호기심이 지독히 많을 뿐이야."라고 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어린 시절 이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하늘은 왜 파랄까? 사과는 왜 아래로만 떨어질까?

 

레오나르도가 다른 천재들과 달랐던 것은 호기심의 범위가 과할 정도로 다양했다는 것이다. 그는 약간 산만한 사람이어서, 하던 일을 끝내지도 않고 호기심에 이끌려 이런저런 분야를 넘나들었다.

이것보다 2배는 더 길어야 할 것 같은데 (진심임)

 

일례로, 화가로써 엄청난 명성을 얻은 인생 후반기에, 오히려 그림을 멀리하고 과학, 공학에 매진했다. 50대 중반의 유럽 최고 화가가 피를 뒤집어쓰고 부패하는 냄새를 맡으며 해부에 전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다빈치는 그런 사람이었다.

 

관찰, 연구, 실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화가로 유명한 그가 사실 예술가보다는 과학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에 IT 기업가로 유명한 잡스는 엔지니어보다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축복이 되었다. 덕분에 그는 이미 있는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직접 배우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혔다. 그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타인의 지식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경험의 제자라고 칭했다.

 

1. 관찰력

케네스 클라크는 레오나르도의 눈을 "비인간적으로 날카로운 눈"이라 했다. 그는 잠자리를 관찰하여 두 앞날개와 두 뒷날개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들판에 앉아서 잠자리 한 마리를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는 레오나르도를 생각해 보자.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을 자세히 관찰하고 노트에 스케치하거나 글로 기록했다.

 

그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통해 패턴 포착하고 유추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도 호기심만 있다면 노력으로 이러한 관찰력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 노트에 관찰력의 비결을 적어놓았다. 그는 책에 비유해 한 페이지의 내용을 한눈에 흡수하려고 하지 말고 단어를 하나씩 보라고 말한다.

사물들의 형태를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우선 그것들의 세부 사항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첫 번째 단계가 뇌리에 확실히 새겨지기 전에 두 번째로 넘어가지 마라. 

 

2. 연구와 실험

그는 그림을 더 사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기 위해 광학, 원근법, 해부학을 연구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 새로운 물감을 실험하고, 학문을 연구하고, 강박적으로 치수를 측정하여 철저히 과학에 입각한 그림을 그렸다.

 

왼쪽은 20대에 그《지네브라 데 벤치》, 오른쪽은 그가 죽을 때까지 들고 다니며 덧칠한 《모나리자》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연구들이 어떻게 그림에 녹아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수많은 분야에서 당대의 과학을 훨씬 앞서갔다. 자연에서 (부피가 0인) 점과 선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빛이 안구의 한 지점으로 모인다는 보편적인 통념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빛이 망막 전체에 퍼져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 말고도 시대를 앞서간 수많은 지식들이 그의 노트에 있었다. 그의 지식들이 당대에 출판되었다면 과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진보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

그는 영향력 있는 공증인 가문의 사생아였다. 그렇지만 그때는 사생아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기도 했고 아버지에게 장남이 없었기 때문에 가문의 저택에서 지냈다.

 

공증인 가문의 자손답게 가벼운 할 일부터 가계부, 스케치, 연구자료 등 거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이 전기도 대부분 그의 노트를 기반으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비밀이나 감정은 노트에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추상적인 개념을 잘 다루지 못했다. 뭐든지 관찰하고 실험하고 시각화해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트에는 수많은 해부도와 신박한 어떤 장치의 스케치들로 빼곡했다.

 

완벽, 미완성

레오나르도는 엄청난 완벽주의자였다. 그에게 완벽이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완벽은 '진짜 완전무결함'을 의미했다. 

 

시대를 앞서간 수많은 지식들이 있는 그의 노트에는 '나중에 논문으로 쓰겠다'라고 적어 놓은 부분이 많지만 정작 실제로 그가 공개적으로 발표한 논문은 단 한 개도 없다.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완성하여 의뢰인에게 넘긴' 그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의 역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는 1503년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죽을 때까지 16년 동안 들고 다니며 계속해서 수정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미완성으로 남긴 지 무려 30년이 지나 새로이 습득한 해부학 지식으로 목 근육을 수정했다.

 

그는 철저히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의뢰인이나 후원자가 아무리 그림을 완성하라고 닦달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질질 끌다가 다른 흥미가 생겨서 미완성으로 남긴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는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과학, 공학 장치들을 많이 설계했는데 대부분 (99%) 현실화되지 못했다. 애초에 논리는 있었지만 비현실에 가까운 공상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현실화보다 구상하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

레오나르도는 다른 예술가들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갔을 난관에 직면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래서 붓을 내려놓았다. 그 행동은 다시는 공공 의뢰를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행동 때문에, 그는 단순히 신뢰할 만한 마에스트로 화가가 아니라 강박적인 천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 미완성으로 남은 《앙기아리 전투》에 대한 내용 中 -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영감이 불현듯 찾아오면, 붓은 다시 한번 포플러 패널 위를 부드럽게 스쳐갔다.
삶의 모든 여정을 거치며 점차 여러 겹으로 덮인 인간으로 거듭났던 레오나르도처럼,
《모나리자》도 점차 여러 겹으로 덮여갔다.

《앙기아리 전투》의 복제작. 원본은 소실.

 

협력

혼자 고독하게 천재적인 작품을 그리는 낭만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 잘못 찾아왔다. 

 

그는 혼자 고뇌하기보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을 즐겼으며 늘 조수와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초년기에는 제자로써 공방에서 스승, 다른 제자들과 같이 그림을 그렸고 말년에는 스승으로서 그랬다.

 

사실 지금까지 서술한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피렌체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대가 천재를 원할 때.라는 글에서 말한 것처럼, 피렌체가 천재적인 예술가를 원했다.

 

당시 피렌체는 사생아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었고, 통치자는 예술가를 존중했으며, 창의적인 천재들이 넘쳐났고,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협업하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당연한 도시였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가 빚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

  • 근육질에, 잘생기고, 말재주 좋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유쾌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쾌남 느낌?
  • 독특한 인물로 알려지는 데 거부감이 없었고, 대신 멋쟁이처럼 차려입고 남들과 다른 점을 부각했다.
  • 경쟁을 좋아하지 않음
  • 동성애자
  • 흥미가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는 부유하지 않았지만 후원자들에게 무릎 꿇는 일은 없었다.
  • 성경의 인물을 많이 그렸지만 딱히 신앙심이 있지는 않았다. 종교보다는 과학을 더 신봉한 사람이었다.
  • 그는 항상 자신을 후원해 줄 권력자를 찾아다녔다.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걸로 보이고 권력자 밑에 있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그런 듯.
  • 후원자를 구하기 위해 편지를 보낼 때는 항상 자신의 능력을 부풀렸다.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인 듯. 노트에 약간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자뻑하는 듯한 글이 있다.
어쩌면 약한 비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절단되고 피부가 벗겨진 시체들과 함께 밤늦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이와 같은 해부도를 그릴 만한 그림 실력이 없을 수 있다.
그림 실력이 훌륭하다 해도, 원근법 지식이 없을 수 있다.
원근법 지식이 있다 해도, 기하학적 표현 방식이나 근육의 힘과 강도 계산 방식을 모를 수 있다.
혹은 인내심이 부족해서 충분히 성실한 작업이 불가능할 수 있다.
  • 공연 기획/무대 연출은 꽤 어릴 때부터 시작했고 그의 삶에서 꽤 비중이 높은 일이었는데 나무위키에 레오나르도의 직업으로 적혀 있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저자는 무대 연출 경험이 그의 상상력, 그림에 내러티브를 녹여내는 능력에 큰 도움이 됐을 거라고 말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구도를 묘사한 기록을 보면 마치 연극 무대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그는 먹는 것도 잊은 채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붓질 한 번 하지 않고 그림 앞에서 생각만 하기도 했다. 미완성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를 공작이 닦달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찌 됐든 공작은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그는 작품을 완성했다.)
대단한 천재성을 지닌 사람은 때로는 가장 적게 일할 때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한다.
아이디어와 그 구상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방식에 관해 골똘히 고민한 다음에야 거기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그도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을 비통해했던 것 같다. 서른 살 즈음에 작성된 노트를 보면 펜촉을 테스트하거나 시간을 때울 때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썼다.
무엇이라도 완성된 것이 있는지 말해봐.

 

마무리

그가 이토록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아직까지도 너무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수께끼를 좋아한다. 이 책은 그의 노트, 당대 인물들의 기록, 16세기에 쓰인 다빈치의 전기들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돼 진위 확인이 어렵고 작품 목록도 없어서 현재도 특정 작품이 레오나르도가 그린 진품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애초에 완성한 작품보다 미완성 작품이 훨씬 많은데 작품 목록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책에는 레오나르도 말고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거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역시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면 천재들이 모이는 곳에, 역사의 선두에 있어야 한다.

 

저자는 마지막에 레오나르도의 인생이 주는 교훈들을 나열해 놓았다.

  1. 끝없는 호기심을 가져라
  2. 지식 그 자체를 위한 지식을 추구하라 - 모든 지식이 당장 유용할 필요는 없다. 가끔은 순수한 기쁨을 위한 지식 추구도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도 자신이 대학 시절 청강했던 타이포그래피 수업이 매킨토시에 도움이 되었다며 당장 쓸모없는 지식이 나중에 중요하게 쓰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3. 어린아이 같은 경이감을 유지하라 -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와 나는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의 놀라운 수수께끼 앞에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서 있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네.
  4. 관찰하라
  5. 세부사항부터 시작하라 - 관찰력을 기르기 위한 레오나르도의 조언
  6.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 - 공연, 연극 기획의 그의 창의력을 키워주었다. 
  7. 복잡한 문제를 파고들어라 - 그는 어떤 일에 열중하는 순수한 기쁨 때문에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8. 산만해져라 - 그는 항상 옆길로 새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레오나르도의 정신세계는 더 풍요로워졌다.
  9. 생각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10. 미적거려라 - 그의 미적거림은 노력이 필요한 미적거림이다. 가능성 있는 모든 사실과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난 뒤에야 그 내용이 무르익을 수 있다.
  11. 완벽함이 적당함의 적이 되도록 하라
  12. 시각적으로 사고하라 - 그는 뭐든지 스케치로 시각화하여 생각했다.
  13. 한 분야에 갇혀 있지 말라
  14. 닿지 않는 곳까지 손을 뻗어라 -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한 번 시도해 보자. 그는 야심 찬 상상을 정말 많이 했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15. 판타지에 빠져라
  16. 후원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라
  17. 협력하라
  18. 종이 위에 기록하라 -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SNS 글은 과연 먼 미래에 남아 있을까? 
  19. 목록을 작성하라 - 뭐든지.

 

인재는 아무도 맞힐 수 없는 과녁을 맞히고,
천재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과녁을 맞힌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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