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바가바드 기타』 소개
2편: 『바가바드 기타』에서 배운 것
힌두교의 3대 경전으로는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가 있다.
그중에서도 『바가바드 기타』 (거룩한 자의 노래)는 쓸데없이 길고 심오한 내용만 다루는 다른 경전들과 달리 짧고 이해하기 쉬운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다양한 실천적, 실용적 조언들을 제공한다. 또한 여자와 천민의 해탈 가능성을 오직 기타에서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힌두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다.
기타는 간디에게 삶의 지침서였으며 그는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듯이 해답을 기타에서 찾아보았다고 한다.
한 때 힌두교의 철학에 매료되었던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한 후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이 문구는 그가 기타에서 인용한 것이다.
특정 작가의 창작물이 아니다 보니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는 함석헌 주석본으로 읽었다. 간디 같은 유명인들의 해석과 본인의 해석을 주석으로 달아놓은 것이다.
기타는 원래 『마하바라타』 (위대한 바라타)라는 고대 인도 대서사시의 일부였는데 이후에 그 철학적, 영적 깊이를 인정받아 독립적인 힌두 경전의 지위를 얻었다. (애초에 기타가 마하바라타의 일부였는지, 아니면 그전에 기타는 이미 독립적으로 존재했는데 마하바라타에서 그 내용을 인용한 것인지는 학자들 간의 논쟁이 있다.) 또한 기타의 철학은 고대 인도라는 같은 문화적 뿌리에서 발전한 불교와 닮은 점이 많다.
기타의 시점은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핵심 사건인 쿠루크셰트라 전쟁의 전날 밤이다. 기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쿠루크셰트라 전쟁
바라타 족의 판두 왕이 죽은 후, 그 동생인 드리타라슈트라가 왕권을 이어받고 자신의 100명의 왕자들과 함께 판다바(판두 왕의 자식을 지칭)들을 키웠다.
드리타라슈트라의 맏아들 두료다나가 영웅적인 인격을 가진 판다바들을 시기하여 그들을 죽일 계획을 꾸미지만 그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산속에 숨어서 살게 된다.
어느 날, 이웃나라의 국왕이 자기 딸의 사위를 고르기 위한 대회를 개최했다. 거기에 판다바 중 셋째인 아르주나 또한 변장하여 참가했고, 승리를 차지하였다. 두료다나를 포함해 대회에 참가했던 왕자들은 미천해 보이는 아르주나에게 모욕을 당한 것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인 '크리슈나'라는 자가 중재하여 다툼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아르주나와 크리슈나는 절친한 사이가 된다.
드리타라슈트라는 이웃 왕국의 힘을 얻은 판다바들과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바라타 땅의 일부를 주었다. 그곳의 왕은 판다바 중 맏형인 유디슈트라가 되었다.
유디슈트라의 유일한 약점은 노름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두료다나는 사기꾼과 함께 유디슈트라를 구슬려 점점 더 많은 것을 걸게 했다. 결국 판다바들은 땅을 다시 내놓고 산속에 12년 동안 유배되었다.
유배 기간이 끝난 뒤 유디슈트라는 자기 형제들을 위해 한 부락씩의 땅만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두료다나는 거절했다. 그리하여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크리슈나는 야다바 왕국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으며, 비범한 인물로 이미 유명했기에 두료다나와 아르주나는 크리슈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크리슈나는 어느 한쪽만을 도울 수 없었다. 그는 둘과 친척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자신과 자신의 군대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했다. 또한 자신은 싸움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조건을 걸었다. 아르주나는 크리슈나를 선택했고, 두료다나는 크리슈나의 군대를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의 전날 밤이 되는데, 아르주나는 친지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전의를 상실해 버린다. 그 상황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의 의지를 북돋아 주기 위해 설교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가바드 기타』의 시작이다.
바가바드 기타
사실 크리슈나는 인간이 아니다.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태어난 비슈누(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의 화신(신성이 인간의 형태로 현현함)이다. 그는 전의를 상실한 아르주나에게 전쟁에 참여하라고 설득한다.
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가 자신의 친지들을 죽여야 하는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이것이 기타의 가장 큰 물음이며,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이유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기타의 목적이다. 기타의 대부분은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르주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크리슈나는 대답한다.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기타의 주제는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 해탈이란 무엇인가?
- 해탈을 왜 추구해야 하는가?
- 해탈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가?
해탈이란 무엇인가?
먼저 힌두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세상'과 '나'는 하나다.) 사상에 대해 알아야 한다.
모든 생명의 본질은 아트만(굳이 따지면 '영혼'과 비슷한 개념?)이며, 각각 자신의 아트만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육체는 단지 껍데기일 뿐이다. 카르마(업)가 남아있는 한 아트만은 그대로인 채 새로운 육체로 끊임없이 윤회한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근본적 원리, 우주의 본질, 우주의 실재 등등 아무튼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지칭한다. 힌두교에서는 이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같다고 한다. 나의 본질이 세상의 본질이고 세상의 본질이 나의 본질이요,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깨달은 자는 그 자아가 브라흐만과 융합되어 개별적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원수와 친지가 똑같이 보인다.
또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난다. 그것은 아트만의 것이 아니라 단지 껍데기일 뿐인 몸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똑같이 보는 평등관이 생긴다.
쾌락 고통을, 이득 손실을, 승리 패배를 하나로 보고 싸울 태세를 갖추어라. 그리하면 죄를 범함이 없을 것이다.
- 2:38 -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모든 것은 똑같다고 해놓고, 왜 아르주나에게 전쟁에 참여하라고 했을까? 전쟁에 참여하나 안 하나 똑같은 거 아닌가?
기타에서는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과에 집착하지는 않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네 할 일은 오직 행동에만 있지, 결코 그 결과에 있지 않다. 행동의 결과를 네 동기가 되게 하지 마라.
그러나 또 행동 아니함에도 집착하지 마라.
- 2:47 -
힌두교에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르마라고 한다. 해탈은 카르마를 해소하고 다르마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궁극적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사실 '의무'라기보다는 '올바른 행동'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의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마음도 집착이기 때문이다.)
아르주나는 크샤트리아(왕족, 전사 계급)로서, 정치와 무력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또한 너의 마땅히 할 의무를 생각해서도 네가 겁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냐 하면 크샤트리아족으로서는 의무인 싸움을 하는 것에서 더한 선행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2:31 -
여기서 또 다른 의문, 신이 신분제를 옹호했다는 뜻인가?
힌두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카르마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타고나며, 그에 맞는 다르마를 행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현대의 세습적인 카스트 제도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 것이다. (모든 종교들이 다 그렇지만)
쉴드를 치긴 했지만 사실 기타를 포함한 경전들 모두에서 신분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맞다.
다르마에는 선행도 포함된다. 아트만으로서 타인을 본다는 것은 나와 타인을 평등하게 본다는 것이다. 내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듯이 모든 것에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
모든 감각을 다스리고, 어떤 경위에 처해서도 평등한 마음을 가지며, 모든 생류의 안녕을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또한 분명히 내게로 올 것이니라.
결국 해탈이 무엇인가? 하면 다음과 같다.
- 우주적, 영적 본질에 대해 깨달음
- 모든 집착과 욕망을 벗어던지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며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 다르마를 행함
- 모든 카르마를 해소하여 윤회에서 벗어남
그런데 다르마가 정확히 뭘까? 어떤 사람의 행동이 신의 뜻인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다. 기타에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 몸 안에 주인으로 계시어 스스로를 주장하시는 이는 마음으로 모든 행동을 내버리시고 평안히 아홉 문의 성안에 거하신다.
그는 하시는 일도, 시키시는 일도 없다.
주께서는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힘을 지어내시지도 않고 행동하시지도 않으며, 또 행동과 그 결과를 연결시키시지도 않는다.
그것은 제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 5: 13, 14 -
라다크리슈난은 이렇게 해석했다.
그는 의무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가 일하는 것은 의무라는 생각에서 하는 것도 아니요, 자기의 존재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그의 완전한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행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신에 대한 호칭이 '하나님'인 것은 역자인 함석헌이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
숨 쉼이나 눈 깜빡임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제가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행동은 그 능력을 우리 자신의 것인 듯 가로챔 없이 자동적으로 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자비로운 사람은 자기가 자비를 행하는 줄 알지도 못한다. 그것은 그의 성격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무집착은 꾸준한 노력과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된다.
행위의 비밀을 파악한 깨달은 자는 어떤 행위도 제게서 나가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나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무사(無私)한 마음으로 행위 속에 몰두하고 있다.
해탈을 왜 추구해야 하는가?
기타에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전도하지 말라고 한다. 스스로 원하는 자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너는 이것을 고행을 하지 않는 자에게나, 참된 믿음이 없는 자에게나, 들으려는 마음이 없는 자에게, 또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말하지 말지니라.
- 18:67 -
어쨌든 해탈을 추구해야 할 표면적인 이유들은 대충 다음과 같다.
-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 일시적인 세속적 즐거움을 넘어선 영원한 평화와 지복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 참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 물질세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종교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윤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 너는 해탈을 추구해야 해"라고 하면 누가 듣겠는가? 구원이 필요한 자는 스스로 이 책을 집어들 것이다.
기타는 경전치고 굉장히 짧기도 하고, 종교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삶과 자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에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읽었으며 실제로도 많은 유명인들이 기타를 읽었다.
내가 기타에서 배운 것,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편으로.
해탈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가?
기타는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요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요가'라는 단어는 감각을 통제하고 신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한 종교적 · 영적 수행 방법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는 운동으로서의 요가도 같은 뜻이다.
힌두교 내에는 수많은 종파들이 있다. 비인격적 개념인 브라흐만과의 합일만을 추구하는 종파도 있고 크리슈나와 같은 인격신 숭배를 인정하는 종파도 있다. 또한 개별 영혼과 초월적 존재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종파도 있고 아무튼 정말 다양한 종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해탈에 이르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기타에서 주요하게 소개되는 3가지 요가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 지혜의 길 (Jnana Yoga) : 경전 공부와 명상을 실천하여 무지를 극복하고 지식을 통해 진리를 깨달음
- 행동의 길 (Karma Yoga) :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행위를 신에게 바친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회적, 도덕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해탈을 추구
- 헌신의 길 (Bhakti Yoga) : 기도, 찬송, 의식 등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믿음, 헌신을 통해 해탈에 이름
진심으로 믿고 따를 수 있다면 어떠한 요가 방법을 채택하든 상관없다.
어떤 이는 쟈나에 의하여 아트만을 자기로서 자기 안에 보고, 다른 이는 삼캬 요가에 의하여 보고, 또 다른 이는 카르마 요가에 의하여 보느니라.
그러나 또 다른 이는 자기로서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하여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예배하게 되는데, 그들도 또한 그들의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길을 벗어나느니라.
- 13: 24, 25 -
그러나 20세기 초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였던 틸라크는 기타의 핵심이 카르마 요가에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다르마를 '행할 것'을 강조하는 카르마 요가가 최고의 길이며, 다른 요가 방법들은 행동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이다. 집착 없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식(본질에 대한 앎)이 필요하며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 또한 필요하다.
나도 그 의견이 타당하다고 본다. 크리슈나는 결국 아르주나에게 전쟁에 참여할 것을 명했다. 명상이나 기도가 아니라.
또 그 의견을 뒷받침하는 몇몇 구절들이 기타에 있다.
너는 네 명함을 받은 일을 행하여라. 행(行)은 비행(非行)보다 나으리라.
행함 없이는 네 육신의 부지조차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3:8 -
그러므로 집착을 떠나 언제나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하라. 집착 없이 행하는 자가 가장 높은 데 이르기 때문이다.
자나카(이상적인 왕의 전형인 역사적 인물)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완전에 이른 것도 행함에 의해서 된 것이다.
너도 이 세계의 유지를 위해서 일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 3: 19, 20 -
내버림도 행위의 요가도 다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그 둘 중 행위의 요가는 내버림보다 더 좋으니라.
- 5:2 -
『바가바드 기타』는 사실 아주 유명하지만 일반적인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책이다. 종교적인 배경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책 내용에 대한 소개만으로도 너무 글이 길어져서 진짜 '독후감'은 2편으로 미루겠다.
이처럼 모든 비밀 중의 비밀인 지혜를 나는 너에게 말했으니,
깊이깊이 생각한 후 네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 18장 6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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