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실 구매한 지 거의 3년이 지났다. 친구를 기다리며 서점을 둘러보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던 이 책을 발견했다.
엄청 두꺼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삶이 궁금했던 마음 (그 순간에는), 짧고 굵은 제목과 표지의 오바마 사진 등 여러 요인에 이끌려서 사버렸지만 너무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안 나기도 했고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고 그래서 오랫동안 내 책장에만 꽂혀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두께를 자랑하는 괴벨스 전기를 읽고 난 후, 발동 걸린 김에 다 읽자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책 페이지 수는 내용만 해도 890p이다. 괴벨스 전기는 1000p가 넘었지만 부록 부분이 길어 실제 페이지는 이 책 보다 적었다. 이 책은 부록이 없는데, 오바마 본인이 부록이나 주석을 싫어해서 최대한 책 내용 안에 모든 정보를 풀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내면에서 단편적인 서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글이 길어졌다고 한다. 이 점은 나도 공감하는 게, 괴벨스 전기 독후감을 그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썼을 때 그걸 보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의도한 감정을 느끼게 하려면 괴벨스가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들도 알아야 했다. 맥락을 모르고 글귀만 있으면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거나 오해하기 딱 쉽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서는 오바마 첫 임기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까지 만을 다루며 2권은 현재 집필 중인 것 같다.
(첫 임기조차 전부 다루지 않았는데 900p, 그 이후와 재선까지 다루면 3권까지 나올 듯하다.)
총통을 신으로까지 칭송한 괴벨스와 다르게 대통령직은 그저 일자리일 뿐이고, 정부도 여느 인적 조직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시작한다.
울림을 주는 사람들
전기 문학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는 책에 나오지만 깊게 다뤄지지 않는 인물, 사건 등을 찾아보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도 보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감동이었다.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졌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행진에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이 노인들이 40여 년 전에 무엇을 느꼈을지 상상했다.
말을 탄 무장 경찰 부대를 맞닥뜨렸을 때 젊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을 광경을 떠올렸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짐은 얼마나 가벼운지 다시금 생각했다.
그들이 여전히 싸움을 벌이고 있고 좌절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비탄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게 지칠 이유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 장면을 나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았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ㅠㅠ
"군악 대장의 본능" - 마틴 루터 킹:
우리는 모두 '퍼레이드에 앞장서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이러한 이기적 충동을 이타적 목표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 가령 봉사에 앞장설 수도, 사랑에 앞장설 수도 있다.
비전의 중요성
나 자신보다 큰 무언가를 좇기로 마음먹고서야 비로소 삶의 목적과 내게 맞는 공동체를 찾을 수 있었다.
머스크, 오바마, 괴벨스가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언제나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거대한 꿈이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비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와 신념이 없다면, 단지 살아있을 뿐이다.
머스크의 리더십의 비결 중 하나는 원대한 비전이다.
그 외 기억에 남는 글귀들
시위 장면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한 채 크나큰 감명을 받았다. 그에 앞서 같은 해에 천안문 광장에서 탱크를 막아선 한 사람을 봤을 때도 같은 감정을 느꼈고, 프리덤 라이더스나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너는 존 루이스와 동료 민권 전사들의 자글자글한 영상을 볼 때마다 같은 영감을 받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움과 타성을 벗어버리고 가장 깊숙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 젊은이들이 단지 자신의 삶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인간 정신을 짓누르는 낡은 잔혹성, 위계질서, 분열, 거짓, 불의를 세상에서 몰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모습 - 그것이야말로 내가 믿은 것이요, 내가 속하길 갈망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튿날 수업을 위해 읽어야 하는 판례집을 내려놓고 밤이 깊도록 일기를 썼다. 머릿속은 다급하고 설익은 생각들로 가득했고, 이 거대한 지구적 투쟁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했지만 그때에도 법률 실무가 내게 기착지에 불과하다는 사실, 심장이 나를 딴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열정은 많은 결점을 메운다.
올바른 자리에서 올바른 일을 합당한 속도로 해내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항상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당신에게는 메워야 할 구멍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 거야. - 미셸 오바마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거나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 때마다 어머니는 소원을 이루는 직접적인 방법은 노력하는 것이라며 대뜸 찬물을 끼얹었다.
자아를 비우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 사실과 논리를 최대한 숙지하고 그것들을 목표와 원칙에 비추어 고려하는 건전한 과정을 거쳤다면 골치 아픈 결정을 내리고도 단잠을 잘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내 위치에서 나와 같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그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한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확립하지 않으면 "실패를 준비하는 셈"이다.
사람은 짐승과 다르지 않단다, 베어. 우리는 자신이 모르는 걸 두려워하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위협을 느끼면 전쟁을 벌이거나 다른 바보짓을 하기가 쉬워진단다. 국제연합은 나라들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 배우고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수단이야. - 오바마의 어머니
선거운동 기간에 깨달은 바 장애물과 고투는 나를 속속들이 뒤흔들지 못했다. 그보다는 내가 쓸모없고 목적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 시간을 낭비하거나 기회를 허비하고 있을 때 낙심하기가 더 쉬웠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나날을 보낼 때도 우울을 느낀 적은 없었다. 대통령의 임무는 지루함이나 실존적 마비를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팀과 함께 앉아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궁리할 때면 기운이 빠지기보다는 오히려 샘솟았다.
정치
이 책을 통해 현대 정치의 여러 가지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 개만 예를 들자면,
1. 정치인들은 왜 협력하지 않는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왜 서로 공격하기에만 바쁜가?
→ 이유는 간단하다. 유권자들은 '적'과 협력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
2. 왜 그렇게 많은 총기사건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총기소지 금지를 하지 못하는가?
→ 나는 총기업계의 로비 때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권리장전"에 '무기 소지의 권리'가 떡하니 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잘못되었더라도 헌법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권리 장전은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작성했기 때문에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성이다.
연방상원 출마에서 언론 컨설턴트 액스를 영입할 때 - 나는 선거 공학을 들먹이기보다는 가슴에 호소하기로 했다.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그가 깨달은 것 - 대중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감정이다. 토론회의 핵심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팀은 일종의 군대처럼 우리를 방어했으며 각각의 운동원은 세뇌되어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것이 현대 정치의 잔혹한 성격의 일부임을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존재를 인정받기, 목소리를 인정받기, 고유한 정체성과 가치를 인정받기. 이는 모두 보편적 인간의 욕구이며, 개인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진부했을지는 몰라도,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는 외국 청중을 보노라면 단순히 상대방을 인정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 내가 취임한 뒤로 전 세계에서 미국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꾸준히 호전되었다. 인기가 높아지자 동맹국들은 자국군의 아프간 파병을 유지하고 심지어 증강하기가 수월해졌다. 자국민이 미국의 지도력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와 팀 가이트너는 금융 위기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보다 수월하게 조율할 수 있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라면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미국을 불황에서 건져내려면 뉴딜 정책 하나하나를 똑바로 추진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전체 계획에 확신을 불어넣어 정부가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어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 위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고난을 설명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 선인과 악인이 뚜렷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덕론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정치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
좋은 정책을 추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바마는 그런 점에서 뛰어난 대통령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적인 능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상하고 조율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인종 문제"를 제외하면 오바마가 한국 대통령이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 정치판의 형태와 닮아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구만.
이 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보이는 곳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열심히 읽고 나서 집 가는 길에 윤석열 대통령의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 뉴스를 보았는데, 그 선언이 있기까지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머리를 싸매 고민하고, 선언문을 작성하고, 수정하고, 연습하는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듯했다.
미국 대통령의 삶
미국 대통령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지구 최고 권력의 자리답게 사생활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다.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개인 핸드폰도 못 쓴다고 한다. (미친 거 아님?) 오바마가 사용한 개조 핸드폰도 심사를 거친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기능이 전부였다.(전화도 안댐;;)
잡담들
연방하원의원 출마에서 러시에게 참패를 당한 후:
나는 마흔이 다 됐고 빈털터리였고 굴욕적 패배를 당했고 결혼 생활은 삐걱거렸다. 난생처음으로 내가 잘못된 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활력과 낙관주의, 잠재력이 허무하게 소진되어 버린 듯했다. 더 암담한 자각은 따로 있었다. 이번 출마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타적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선택을 정당화하거나 아집을 만족시키려는, 아니면 내가 못 이룬 것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질투심을 달래려던 것임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나는 더 젊은 시절에 그렇게는 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경고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정치인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질도 별로 없었다. (근데 주상원의원이었긴 함)
토론회를 하기 전 랩, 그중에서도 JAY-Z의 <My 1st song>, 에미넴의 <lose yourself>와 같은 "두려움을 허세로 가리고 버텨내라"는 내용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근데 흑인은 역시 '랩 소울'이 있는 것 같다. <My 1st song>은 내 플레이리스트에도 저장했다.
대통령 후보자 간의 tv 토론회 전 오바마와 팀은 90분짜리 가상 토론회를 진행하고, 속도, 자세, 어조, 단어 등 모든 사항을 점검하고, 가능성 있는 모든 질문을 고려해 보는 등 "엄청난 특훈"을 했다. 연설 전 거울 앞에서 제스처를 연구하고 사전 연설을 해 보는 괴벨스가 떠올랐다. 그는 선전이 "예술"의 일종이라고 했다.
규제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을 결정하는 데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정보규제 사무국에서 어떤 규제가 비용을 정당화할 만큼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쓸모가 없어진 규제가 있는지 검토하는데, 머스크가 컨베이어 벨트에 주위에 서서 나사 하나하나에도 그것이 꼭 필요한지 검토하고 결정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군의 계획에 대한 바이든의 트집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반대파가 적어도 한 명 있었기에 모두가 문제를 더 신중히 검토해야 했으며, 그 반대자가 내가 아니었기에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좀 더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었다.
한편 여성들은 토론 중에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라는 나의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누가 당신 말을 중간에 끊으려 들면 아직 내 말 안 끝났다고 말하세요!")
이건 나도 써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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