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사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새로웠다.
내가 좋아하는 빅테크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했다.
머스크는 아내를 때리는 아버지를 뒀고 그들은 곧 이혼했다. 잡스는 입양아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얼마나 특이한 사람들인지.
게이츠는 너무나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천재 너드의 성공 스토리 같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사립학교에 입학했고, 거기서 성공을 함께하게 될 동료들을 만났다.
성격도 그냥 전형적인 고기능 자폐 느낌. 집중력 미쳤고, 다른 사람 감정을 잘 못 읽고, 컴퓨터처럼 생각하고...
본인도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운이 매우 좋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미국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것, 훌륭한 부모님을 만난 것, 시대를 잘 타고난 것 등...
그의 성공 비결도 쉽게 요약할 수 있다.
일단 잘 태어났고, 탁월한 집중력으로 오랜 시간 일했고, 운이 좋게도 기술의 최전선에 관심이 있었고 일찍 접할 수 있었던 덕분에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고,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그렇게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집중력, 몰입
나는 이전부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레이크 사이드의 수업 일정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는 빠르고 직접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했고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할 수 있었다.
나는 장시간 강도 높게 작업하며 코드를 빠르게 작성할 수 있는 것이 자부심을 느꼈다.
BPA에서 일할 때는 거의 100시간 동안 지하 타임 터널을 떠나지 않고 일함으로써 기존의 내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거의 나흘 동안 샤워도 하지 않고 거의 먹지도 않았다.
TRW의 엔지니어들은 어떤 과제를 던져 줘도 기어이 해내려 노력하는 나의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하버드 1학년 가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에이킨 연구소에서 밤늦게까지 작업에 몰두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카페테리아에 들르는 시간과 몇 번의 영화 관람을 제외하고는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에이킨 연구소에서 보냈다.
나는 삶의 상당 부분을 <작성, 실행, 수정>이라는 기묘하고 거의 마법 같은 피드백 루프 속에서 보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지대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친구들에게는 극단적으로 보였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효과적인 일상의 리듬에 몸을 던졌다.
공부와 프로그래밍을 병행하면서 36시간 연속으로 깨어 있기도 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피곤이 몰려오면 12시간 이상 잠을 자곤 했다.
그 가을, 내 일상은 며칠씩 코드를 작성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만 그 자리에서 잠을 자는, 정신없는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면서 노란 패드에 코드를 적어 나갔고, 나흘 내내 포장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중: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매우 복잡한 코드 작성에 몰두하고 있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혼자 고립된 장소에 들어가 작업하고 있어요.'
나는 마치 잠수함의 밀폐 해치를 닫는 것처럼 나머지 세상과 단절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책임감에 사로잡혀 해치를 잠그고 살았다. 여자 친구도 없었고, 취미도 없었다. 나의 사교 생활은 폴, 릭,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내가 아는, 앞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헌신을 기대했다. 우리 앞에는 엄청난 기회가 놓여 있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물론 피곤했지만, 굉장히 짜릿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과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나는 폴이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종류의 도움을 내가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24시간 함께 일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날 밤 운하를 따라 걸으면서 나는 만약 학교를 그만두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게 된다면, 회사 지분을 더 많이 갖고 싶다고 폴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1년에 한두 번, Think week을 가짐. 별장에 칩거하며 아무 방해도 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되는 무엇이든 집중적으로 학습.
열정
지도 교수와의 첫 만남 당시, 나는 내 특유의 과도한 사고의 흐름에 빠져들면서 미래의 컴퓨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낡은 기계들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며 언젠가는 컴퓨터가 인간 두뇌의 힘과 맞먹을 것이기에 심리학 수업에 등록했다고 설명한 기억이 난다. 내 말을 모두 흡수한 후 지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넌 정말 조숙하구나!"
그즈음 나는 마주치기만 하면 생각하고 있던 모든 기술과 연구소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흥분해서 떠들어대며 시간을 빼앗는 나를 그가 지겨워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내 편에 서 있었다. 그의 메모에 따르면,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벌써 대학원 수업까지도 지루하게 느끼는 학부 2학년 생이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프로젝트를 찾았으며 가지고 놀 무언가가 필요해 마이크로컴퓨터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잠을 자거나 코딩을 하거나 사업 확장의 기회를 찾기 위한 편지를 쓰지 않을 때면, 내 머릿속의 항상 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생각으로만 채워졌다. 어떤 사람들을 채용하고 어떤 거래를 체결하고 어떤 고객을 확보할 것인가? 일단 이런 생각에 꽂히면, 귀를 기울이는 누구에게든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그냥 다 쏟아내곤 했다.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흔드는 가운데 어떻게 모든 PC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탑재할 계획인지 왜 모토로라 6800이 모스텍 6502보다 나은지, 왜 중소기업은 알테어 대신 스피어 1을 구매할 것인지 등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떠들어 댈 정도였다. 나는 내가 들은 모든 것, 새로 흡수한 모든 정보를 그렇게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했다.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식사를 끝낸 것을 알게 되곤 했다.
당시 누군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으면, 나는 전 세계의 모든 PC에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성격
내가 오늘날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아들이 왜 특정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사회적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며, 때로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례하거나 부적절하게 구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지침서나 교재가 없었다.
계약에는 구속력이 따른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나는 그들의 나태함과 비전문적 행태에 짜증이 났다.
월말에는 모두를 모아 놓고 폴이 정말 나를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길 원한다면 내가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고 통보했다.
나는 평생 일종의 회피 방식으로 상실에 대처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을 다른 것에 서둘러 집중하는 식이다.
에이킨 문제와 관련해 부모님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그 부분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매우 독립적이었고,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에 지금보다 덜 민감했다.
종종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생각함.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타입.
나는 대학 생활의 열광적인 학습 속도와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에드는 키가 큰 데다 거구였고 직원들을 위압적으로 대했다. 직원들은 그에게 늘 공손한 태도를 보였고, 에드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늘 그랬던 것처럼, 동등한 입장을 취하면서 에드에게 접근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곤 했다. 그는 나의 에너지와 강렬한 열정, 당장 논의하고 해결을 보려는 성격에 흥미로워하는 듯 보였다. 에드가 우리의 계약 체결을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을 끌 때 나는 시애틀로 날아가 그가 서명하기를 기다렸다.
해피아워 무리들은 회사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변화를 에드에게 촉구하도록 나를 부추겼다. 그중 하나는 MITS가 판매하는 메모리 보드에 결함이 있어서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작성에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은행의 압박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바로 반박했다. "보드를 팔지 마세요! 우리가 해결할 테니 그때까지만 판매를 중단하라고요!"
이야기들
일단 그냥 천재. 하이킹하면서 머릿속으로 프로그래밍함.
천재들이 그렇듯이 지적 열망이 있음.
사실 약 4개월에 불과했지만, 이 기간은 나에게 이후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작업 스타일을 형성해 주었다. 나는 비용이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한 몰입 상태에 빠져들곤 했다. 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완성하자마자 컴퓨터에게 실행을 요청하면 제대로 만들었는지 아닌지 즉각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시도해 보고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작동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도한다. 컴퓨터는 어찌 보면 마치 슬롯머신처럼 무작위 간격으로 작은 보상을 주면서 나를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코인을 내어 주는 대신 내 프로그램의 일부가 작동할 수 있다고 확인시켜 주며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이렇게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갈증이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형성되기 시작한 내 세계관 속에서, 수학이 요구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어떤 과목이든 마스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느껴졌다. 지능의 계층 구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것은 내 이야기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수학자 조던 엘렌버그는 탁월한 저서 <틀리지 않는 법>에서 '수학을 안다는 것은 세상의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표면 아래에 숨은 구조를 볼 수 있는 엑스선 안경을 착용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나도 엑스선 안경 덕분에 올바른 답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므로 내가 찾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강화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이 중요함. 협력을 해야 됨.
켄트, 폴, 릭 이 사람들이 진짜 큰 도움 됐네.
켄트와의 우정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더 나아지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격언은 진부하지만 절대적으로 사실이다. 그때까지 나는 아마도 어떤 10대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코드와 구문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턴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었다. 그의 견실한 지도를 받으며 나는 더 나은 코드를 작성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자기 인식에 대한 교훈도 얻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체 뭘 믿고 프로그래밍에 대해 그렇게 오만했던 걸까? 내가 그렇게 잘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지?' 나는 완벽에 가까운 컴퓨터 코드란 어떤 모습일지 진지하게 숙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탁월한 수학 두뇌를 가졌지만, 최고의 수학자가 될 수 있는 통찰력의 재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대학에서 가르치지만 획기적인 업적을 남기기에는 부족한 수학자...
나는 존 메이더 같은 인물은 되지 못할 것이었다.
폴과 나는 MITS에서 아웃라이어였다. 밤늦게까지 헨드릭스의 귀청을 찢는 듯한 솔로 연주곡에 맞춰 프로그래밍을 하는 폴과 항상 들떠서 강렬한 열정을 쏟는 나는 확실히 그들과 다른 이질적 존재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밖에 없었다. 폴은 에드가 직원들에게 고객을 소프트웨어 구역으로 데려가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즐겨 입에 올렸다. 그는 우리가 면도도, 샤워도 하지 않아서 그런 지시가 떨어진 거라며 웃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약하고 있던 당시에도 학업, 켄트와 시작했던 교통량 집계 사업, 레이크사이드의 수업 일정 프로그램에까지 관여하고 있었다. 진짜 미친놈이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앞날에 집중하면서 살았다.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을 수년 후에나 이뤄질, 어쩌면 아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획기적인 도약을 모색하는 일에 쓰고 있다.
사업
그래픽과 네트워킹은 당시 컴퓨팅 분야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르던 두 영역이었다. 모두 초기 단계였다.
그래서 혁신의 여지가 많았고 어느 한 명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었다.
로버츠는 이미 그런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작동하는 버전을 가장 먼저 가져오는 사람과 거래가 성사될 것이라고 하면서, 알테어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가 어떤 BASIC 버전을 가지고 있든 그것을 돌려 보려면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두어 달 전 우리가 첫 번째 잡지 기사에서 접한 호언장담과 달리, 당시의 알테어는 완성되지도 않은 투박한 프로토타입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개인용 컴퓨터 혁명의 여명기였다. 우리 모두 그저 흉내만 내며 길을 찾고 있었다.
결국 새로운 산업의 흐름을 잘 탄 거네. 능력도 있었고.
수많은 한밤 토의를 통해 도달한 결론은 PC가 저렴해짐에 따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도 무한대로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의 제품은 잠재 고객들이 무료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 곳의 고객사가 있었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시기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촉진하려면 도둑질을 멈춰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잡지에 게재했다.
그 편지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갑자기 이념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나는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1977 트리니티"라고 불리는 세 회사의 PC는 컴퓨터를 주류로 이끌었다.
또한 트리니티 모두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작한 BASIC이 설치되었다. 이때 직원 수는 12명. 생각보다 적네?
다른 사람 이야기
MITS의 사장 에드 로버츠는 잡지 <Popular Electronics>에서 신년호에 소개할 컴퓨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프로토타입도, 충분한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잡지사에 나름의 아이디어를 피력했다. 잡지 출간 일정에 맞춰 자신이 반드시 저렴한 컴퓨터를 준비하겠다고 장담한 것이다. 에드는 일정에 맞춰 프로토타입을 배송했지만 도착하지 않았다. 1월호에 실린 알테어는 대충 조립한 모형으로, 빈 상자였다. 그러나 그 잡지로 인해 폴과 게이츠를 만나고 소프트웨어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깡이 있어야 함. 일단 지르면 기회가 생김)
알테어와 그 두뇌인 인텔 8080에서 영감을 받은 휴렛팩커드의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은 자신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마이크로프로세서인 MOS 테크놀로지 6502를 구입해 신속하게 나름의 컴퓨터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다른 많은 홈브루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워즈니악 역시 엔지니어링의 스킬과 클럽에서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자부심에 동기를 부여받았다. 다시 말해서, 친구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그 프로토타입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잡스는 최근 7개월간 인도에 머물다 돌아왔는데, 훗날 그것이 자아 탐구의 여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돌아온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그는 황색 승복을 벗고 머리를 기른 후 워즈니악에게 그의 컴퓨터 취미가 사업이 될 수 있다고 확신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회사 이름을 애플(Apple)로 짓고 첫 번째 컴퓨터인 애플 1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는 어떤 아우라가 느껴졌다.
또한 그 당시에도 이미, 애플과 잡스를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어줄 트레이드마크 같은 디자인 감각이 돋보였다.
애플 2는 PC라기보다는 세련된 가전제품처럼 보였다.
기사가 나간 후 MITS로 전화가 쇄도했다. 심지어 남아공 같이 먼 곳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들은 기사에 등장한 그 잘 나가는 회사와 관계를 맺고 유통업체가 되거나 컴퓨터 매장을 열거나 기업 고객에게 알테어를 소개하는 컨설턴트가 되고 싶어 했다.
(오니츠카 타이거의 미국 유통업체로 시작했던 나이키)
대중이 아니라 기업에 제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에 대해서 내가 너무 무지했던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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