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들을 자주 읽어서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찾은 게 『데미안』이었다. 책 두께도 얇길래 대충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으려고 골랐는데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진짜로 뇌 빼고 읽을 수 있도록 SF 소설을 골랐다.
그 책이 바로 일론 머스크가 추천한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Moon is Harsh Mistress'. 직역하면 '달은 가혹한 여주인'이다.
책을 다 읽어도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서 검색을 해 보았다.
가장 그럴듯하고 내가 납득한 설명은 달 세계의 가혹한 환경과 문화를 'Harsh Mistress'로 비유했다는 것이다.
무려 1966년에 나온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것 같은데 서양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하다.
줄거리 (스포 없음)
지구인들은 달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달에서 오래 체류한 사람들은 달의 약한 중력에 몸이 적응해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지구의 각국은 죄수를 달에 보내 달 식민지를 개발하도록 하고, 세계 연방의 총독부에서 총독을 보내 달 세계를 관리한다.
작중 시점인 2075년은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후이다.
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죄수가 아니라 달에서 태어난 자유인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세계 연방은 여전히 총독을 통해 달을 관리하고 있으며, 당연히 달 세계인들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주인공 '마누엘'(별명 '매니')은 컴퓨터 기술자다. 달 세계인 중 유일한.
달 세계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그는 드물게도 지구에 유학을 갔다 온 적이 있어서 컴퓨터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무거운 중력 때문에 생활이 어려울 뿐이지 지구에 가자마자 죽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고증 오류라고 볼 수 있는데, 어쨌든 달의 중력에 적응하고 나면 지구의 중력에 영원히 다시 적응할 수 없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PC가 보급되기 전인 60년대에 나온 소설임을 감안하면 컴퓨터 기술자가 없는 것도 납득이 간다.)
유일한 컴퓨터 기술자인 매니는 자연스럽게 총독 청사 메인 컴퓨터의 수리를 전담하게 된다.
메인 컴퓨터는 고성능의 슈퍼 컴퓨터로, 달 세계 대부분의 전자 장치와 연결되어 있다. 컴퓨터 중 대장인 격.
매니가 수리를 하며 알아낸 것은 바로 그 컴퓨터가 "자유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달에서 매니 혼자만 알고 있으며, 컴퓨터에게 꾀병을 주문하고 고치는 척하는 식으로 총독부를 등쳐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둘은 꽤 친해져서 매니는 그에게 '마이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느 날, 매니는 호기심 많은 마이크를 위해 녹음기를 가지고 어떤 집회에 참석하게 되는데, 사실 그 집회는 총독부의 정책을 규탄하는 집회였고, 졸지에 유혈 진압 사태에 휘말리게 된다.
여차저차 일련의 사건 속에서 매니는 자유 의지 컴퓨터 마이크, 그리고 몇몇의 동료들과 함께 지구로부터의 독립을 모의하게 되는데...
특징
마이크의 분량이 제2의 주인공급으로 상당하다.
경제, 정치, 선전선동 등 혁명의 과정이 꽤나 디테일하다고 느꼈다.
작가가 성적으로 개방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성적인 비유와 묘사가 엄청나게 많고 rape라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사실 이걸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우리나라가 잘못됐다는 뜻이 아닐까...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작가는 또한 다부다처제를 신봉한다고 한다.
달 세계는 남자의 수가 여자보다 몇 배는 더 많아서, 약간 여성 우월주의 사회이다.
(그렇다고 제도적으로 여자를 우대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달 세계에는 법이 없다!!!)
달 세계의 결혼은 매우 특이한데, 여러 명의 남자와 여러 명의 여자가 '하나의 결혼'을 이룬다.
계속 추가할 수도 있다. 결혼이라는 계약이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계약'은 없다. 법이 없는데 어떻게 계약이 있는가!!!)
그렇다고 완전 개방적인 프리섹스 느낌은 아닌 게, 의외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족애가 있는 소설이다.
상당히 전개가 시원시원하다.
그리고 끝까지 읽으면 은근히 여운이 지림...
맨, 나의 가장 좋은 친구!
TANSTAAFL
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다."라는 문장에서 앞글자만 따서 줄인 것이다.
간단히 "탄스타플"이라고 부른다.
의미는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중반쯤에 처음 언급되는데, 작품 내에서 꾸준히 쓰인다.
유래는 다음과 같다. 사실 이것도 추정이고 정확히 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래 있었던 격언이지만 이 책에서 사용된 후 폭발적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에선 별로 안 유명한 것 같지만)
나도 딥러닝 논문을 읽으면서 종종 본 적이 있다.
머스크는 왜 이 책을 추천했을까?
[1]
다들 알다시피 머스크는 화성 테라포밍을 꿈꾸는 사람이다.
지구 외에 다른 천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지구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2]: 자유 의지 컴퓨터 마이크
마이크는 '살아있는' 것일까?
마이크가 사람의 감정을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다면 감정이 있는 것일까?
마이크 그 자체, 그리고 마이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매니가 마이크를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그가 모르는 사이에 마이크가 그 사람과 친해졌을 때 매니가 느꼈던 묘한 질투심을 나도 느꼈다.
[3]: 자유
머스크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달 세계에는 법도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일을 못하게 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규칙, 법률... 항상 다른 사람들을 속박하고 싶어 한다. 이자들 중에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도록 이걸 통과시켜 주시오."라고 말하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이웃들이 하는 꼴이 보기 싫은 어떤 것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4]: TANSTAAFL
머스크보다 탄스타플을 잘 이해한 사람이 있을까? 그는 30년 동안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해왔다.
'그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충분한 대가를 치렀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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