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길을 따라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힘들었던가?
데미안의 도입부.
나는 사람들이 많이 읽는 민음사판이 아니라 배수아 번역본으로 읽었다.
데미안을 읽게 된 계기는 북튜브 '너진똑'의 '데미안 완전판'을 보고 너무 재밌고 유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데미안 완전판: https://www.youtube.com/watch?v=Z0aXJeC4HiE
데미안 완전판 부록 - 데미안은 이상성욕소설?: https://www.youtube.com/watch?v=Yj1SBGcquRs
웬만한 독서광이 아니고서야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데미안을 안 읽었다면 위 영상도, 내 글도 다 읽어본 다음에 읽을 것을 추천한다.
나도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읽었다면 얻어가는 것이 적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책
데미안을 읽고 인생책을 갱신했다. 정말 최고의 책이다.
중반부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가 나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유레카를 외칠 때 아르키메데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고양감 때문에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구전되던 이야기들이 모여 경전이 되듯이 내 인생이 페이지들이 모여 하나의 책으로 정리되는 느낌이었고,
내 인생이라는 우주 속에서 아무렇게나 떠 있던 경험과 생각의 별들이 일순간 연결되며 별자리가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그 별자리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그것은 오직 나만이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의 조언자가 세 명 나온다. 각각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이다.
책의 주제도 주제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조언자들의 조언들 또한 심장에 박힐 정도로 너무너무너무 주옥같다.
어느 정도냐면, 처음에는 읽으면서 좋은 구절들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만두었다.
좋은 구절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을 기록해 놓고 다시 읽는 거나 그냥 책을 다시 읽는 거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본문에서는 어떤 특정한 구절의 의미나 해석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데미안
너진똑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인공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헤세가 데미안을 집필하던 시기는 정신분석의 대가 칼 융의 제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던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거의 오피셜이다.
데미안의 주제는 도입부 챕터만 읽어도 바로 알 수 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라.
데미안 주제의식 3줄 요약 (솔직히 이거보다 간단하고 통찰력 있게 요약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라 (내면적으로 가장 편안한)
-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저절로 솟아오르는 대로 행동하라 (그게 좋은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 상관없이)
- 어떤 운명이든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어라
각성한 인간에게는 단 하나의, 유일한 의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을 찾기, 자신 안에서 확고해지기,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더라도, 오직 자신의 길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가기.
- 169p
데미안을 읽으면서 자꾸만 스티브 잡스가 생각났다.
데미안의 주제의식에 가장 근접한 인간 중 하나가 잡스인 것 같다.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으면서 크게 인상 깊었던 구절은 아닌데 후천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 된 잡스의 말이 있다.
왠지 그 말을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
말과 행동에 필터가 아예 없는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잡스는 이렇게 답했다.
난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나한테 다른 사람이 되길 기대하면 안 되죠.
힌두교
나는 힌두교 경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를 읽은 적이 있다.
데미안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타에서 말하는 내용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헤세는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고, 『싯다르타』, 『동방 순례』와 같은 책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동양 철학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잡스 또한 구루를 찾으러 인도에 갈 정도로 동양 철학에 진심이었다.
또, 읽다 보니 책 안에서도 또 다른 힌두 경전인 『베다』가 언급되며, 동양 철학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구절도 있고~
우리 내면의 신성과 자연의 신성은 서로 분리할 수 없이 동일하다.
- 139p
이런데 전율이 일어날 수가 있어 없어? 어쩐지 느낌이 비슷하더라니 다 연결되어 있었던 거야 그냥~~~
너진똑 영상에서는 데미안(인물)을 '내 안의 다른 나'로 설명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런 인격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1954년, 헤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데미안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 진리 혹은 교리의 형상화입니다."
좀 이해하기 어렵긴 한데 주제의식은 데미안과 거의 같으니, 관심 있으면 『바가바드 기타』 소개도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기타는 힌두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라 힌두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처럼 비밀 중의 비밀인 지혜를 나는 너에게 말했으니,
깊이깊이 생각한 후 네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 18장 63절 -
잡담
성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여 성경 해석의 난제로 꼽힌다.
데미안에서 이 카인과 아벨에 대한 신박한 해석을 내놓은 것도 너무 인상 깊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려는 사람'을 '카인의 표식을 가진 사람'에 비유했다.
마찬가지로 어떤 짐승이나 인간이 온 정신과 의지를 한 가지 일에 집중적으로 쏟아붓는다면, 그 일을 이룰 수 있어.
그게 전부야. 네가 궁금해하는 일도 똑같아.
어떤 사람을 자세히 관찰해 봐. 그러다 보면 넌 그 사람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게 되는 거지.
- 75p
다빈치는 베일 듯이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졌다. 그는 그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냥 '관찰'하면 다빈치가 떠오른다. 그는 엄청 사교적인 사람이었는데 관찰력이 좋았던 것도 한몫했을까?
인간관계론을 읽고 나서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상대방을 본인보다 더 잘 알면 쓸 데가 많을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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