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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생각들

깨달음.

モ誰(모군)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Pixiv

모군님의 작품


옛날에 데이터 수집을 목적으로 픽시브에 가입했었다. 요즘도 심심할 때 아주 가끔 구경을 하는데, 이분이 내가 픽시브에서 본 사람 중 제일 잘 그리는 것 같다. 최근에는 100일 연속으로 하루에 그림을 한 장씩 그리는 100일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그림 퀄리티가 하나하나 미친 수준인데도 매일 작품이 나온다.

이분이 방송을 하시는 줄 몰랐는데 저번에 우연히 트위치에서 이분을 발견했었다. 오늘도 트위치에 들어갔다가 마침 볼 만한 방송이 없어서 이분의 방송에 들어가 봤고, 그림의 가장자리 부분을 그리고 있어서 전체 그림을 보려고 다시보기를 봤다. 다시보기를 보던 도중 시청자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밌냐는 질문을 했고, 모군님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그리는 게 재미없는데, 오히려 좋다. 행복과 불행은 낙차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을 더 오래, 더 고통스럽게 그릴수록 오히려 좋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굉장히 유익하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미 알던 개념이지만 작업량, 퀄리티 모두 최고인 사람이 말하니까 뭔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

불교에서 하는 이야기도 똑같다. 읽어볼 만한 불교 간단 요약 만화

행복과 불행은 어떤 절댓값이 아니라 그 차이에서 오는 것이며, 그래서 행복 뒤엔 반드시 불행이, 불행 뒤엔 반드시 행복이 온다. 하지만 이 행복과 불행을 순환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모든 것은 순환한다. 따라서 삶은 고통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잠깐 깼다가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잠을 더 잔다면, 피곤한 몸을 일으키는 불행을 피해 잠깐은 행복하겠지만 결국에는 그로 인해 불행을 마주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면 일찍 일어나는 것이 옳은 선택이냐? 그건 아니다. 모든 선택은 결국에는 고통이다. 그래서 죽음이 아니면 열반에 들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유명인들이 자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어느 누구라고 해서 딱히 더 행복하지도, 더 불행하지도 않다.)

불교에서는 번뇌를 없애기 위한 수행을 한다.
조던 피터슨은 한 강의에서 삶은 고통이고 삶을 열심히 살아갈 이유는 딱히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선택도 결국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유전자 전달체로써의 목표(좋은 유전자를 가진 이성을 만나 자식을 잘 키우기 - 사회적 성공도 결국 이 목표의 연장선이다.)를 달성할 수 있는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절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피하려 하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잠깐 기분 좋기 위해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일이나 공부하기 싫어서 SNS, 커뮤니티, 게임에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스턴트 음식을 먹지 않을 이유, 가상세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도 결국에는 고통이라는 것을, 그 어떤 선택도 더 나은 행복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러한 선택지를 고를 사람은 적을 것이다.


+친구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는 '그래도 음악은 좋다. 그래도 삶에 여유를 가지는 것은 좋다.' 이런 뉘앙스의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머스크처럼 여유없이 올인하는 삶을 더 동경하고, 뭔가를 할 때 음악을 들으면 확실히 방해가 됨을 느껴서 잘 듣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할 때는 음악을 듣는 것 보다 차라리 할 일을 빨리 찾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물론 음악을 좋아한다. 굳이 따로 시간을 내서까지 즐기고 싶지는 않다는 뜻. 친구는 연주회를 찾아다닐 정도로 진심인 사람이다.)

나와 친구는 다른 인생을 살았기에 나는 친구의 말에 별로 공감되지 않았다. 그 어떤 판단에도, 그 어떤 생각에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정답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소라게처럼 자신만의 생각의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에 이렇게 줄줄이 써내려간 이 글도 진리가 아니라 내 생각의 집일 뿐인 것이다.

+추가로 읽어볼 만한 나빌 라비칸트의 말을 모은 글
Monkey mind를 꺼라

+불교계 격언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여러 군데 가는 것 같아도 가는 데는 딱 두 곳 뿐이니 과거와 미래다. 오직 현재를 살아야 한다.
(가상 세계로 도망치는 것도 과거와 미래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나빌 라비칸트도 말했듯이 어린시절이 더 행복했던 이유는 후회할 과거가 적고 미래가 너무 멀게 느껴져 현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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