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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독후감

Shoe Dog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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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트너, 팍스 나이트 (1968)

나는 일주일에 6일을 프라이스 워터하우스(회계 법인)에 출근하고 이른 아침, 늦은 밤, 주말, 휴가는 블루 리본에서 일했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사교 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활에 전적으로 만족했다. 확실히 내 삶은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훨씬 더 심한 불균형을 원했다. 내가 원한 것은 새로운 종류의 불균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블루 리본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나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내 삶이 온통 일 뿐이고 휴식이 없을지라도. 나는 일이 휴식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희망이었다. 비록 블루 리본의 매출이 5년 연속 두 배씩 증가했지만, 설립자에게 월급을 줄 형편은 아니었다. 타협점을 찾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으면서 노동 시간이 적은 일을 찾았다. 나는 포틀랜드 주립 대학교에 지원해 매달 700달러를 받는 조교수 자리를 얻었다. 

 

사실 그는 좋은 학력에 꽤 뛰어난 회계사였다. 특허사무소 일을 하면서 엄청난 논문들을 쏟아냈던 아인슈타인이 생각나기도.

육상 선출에, 군대도 갔다 오고, MBA에 회계사 자격증까지. 게다가 주 6일을 출근하면서 사업까지. 뭐 하는 사람이지?

 

'자산은 부채와 자본을 합친 것이다. 이 기초적인 방적식은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지만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 리본은 부채 비율이 1000%에 육박했다.

 

회계학 과목을 신청한 학생으로 와이프인 팍스를 처음 만남. (parks를 책에서는 파크스라고 번역해 놓았는데 팍스가 더 편함)
첫눈에 반함. 클레오파트라가 생각났다고 한다. 질문을 많이 하는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을 사용. 특히 미모의 여학생에게.
팍스의 중간고사 성적은 교실에서 1등이었다. 팍스가 기뻐했을까, 내가 더 기뻐했을까? 잘 모르겠다.

팍스가 나에게 지도교수가 되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 물론이죠."
그러고는 불쑥 물었다. "어떤... 일을... 해보는 건 어때요? 내가 작은 신발 회사를 경영하고 있거든요. 음... 부업으로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장부를 정리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팍스는 단지 일만 잘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일을 즐겁게 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다루는 데 재주가 있었다. 

우리 사업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재무제표의 비용과 수익, 신발로 가득 차서 점심 주문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팍스는 결코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왜 첫 데이트 장소로 동물원을 택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양한 동물들은 내가 세계 여행을 다녔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좋은 화젯거리가 되지 않을까? 나는 피라미드, 니케의 신전을 본 이야기, 캘커타에서 많이 아팠던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한 적이 없었다. (진짜 쌉공감) 그날 팍스에게 했던 말 중 캘커타에서 있었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이었다고 말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나는 블루 리본에 아직 기반이 잡히지 않았으며 언제라도 망할 수 있지만,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나의 조그만 신발 회사는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생명체 같아서, 이 생명체가 자기 힘으로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또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게 아주 싫다고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을 만들고 싶고, 내가 그것을 만들어낸 데 보람을 느끼고 싶고,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이 의미 있게 느껴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팍스에게 만나는 남자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그렇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녀에 따르면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은 모두가 철없는 젊은이였다. 그들은 팍스에게 스포츠와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나는 이제 자동차와 스포츠에 관심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만큼 영리해졌다. 
(유튜브에서 미국의 연애 문화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소위 '어장관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여러 남자들을 동시에 만나면서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상당히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녀는 안정을 좋아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녀가 회계학에 이끌리는 이유도 그것이 확실하고 안전하며, 일자리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줍음을 너무 많이 탔다.

 

그녀와 약혼하고 일본 장기 출장을 떠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갖는 감정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그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팀 스포츠를 통해 성장했다. 

나의 정신은 혼자 있는 시간과 팀의 구성원으로 있는 시간이 잘 결합될 때 진정한 조화를 이루었다.

 

처음 만나고 1년 만에 결혼

페넬로피 팍스 나이트


사장으로 산다는 것 (1969)

영업사원의 대부분은 육상 선수 출신이었다. 블루 리본은 영업 수수료만 지급했기 때문에, 그들은 육상 대회가 개최되면 맹렬히 달려갔다. 블루 리본의 매출은 나날이 성장했다.

 

31살, 블루 리본에 올인하기로 결정

 

나는 지난번 기타미가 보낸 편지에서 그가 일본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다르게 블루 리본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니츠카에 스파이를 고용했다. 일본 산업계에서는 스파이가 흔하다고 한다. 그 스파이는 오니츠카의 야유회에서 같이 이야기했던, 태풍으로 집을 잃어 자전거를 살 돈도 없다는 딱한 이야기를 듣고 자전거를 선물해 줬던 후지모토였다. 필은 자신이 스파이를 고용했다는 것을 전 직원에게 알렸는데, 이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되었다.

 

기타미는 내가 지금까지 그들에게 과대선전을 해왔던 '본사'라는 건물을 보고 당혹스러워했다. 합판 벽, 깨진 유리창...

나는 속으로 '이제 끝장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페니(팍스 애칭)와 나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고 있었다. 페니는 완만한 성격이지만, 나는 특이한 성격이었다. 따라서 더 많이 알아가야 할 사람은 바로 페니였다. 매일 밤 페니가 사다 놓은 안락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다. 인생은 성장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

 

페니는 임신을 했다. 나는 페니에게 블루 리본이 파산하면, 우리는 집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페니가 항상 피하고 싶어 하는 불안정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페니는 블루 리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임신한 몸으로도 회사에 나와 일을 했고, 대학 졸업장까지도 포기했다.

 

우델(하반신 불구 직원)과 나는 다른 점이 많았다. 하지만 일에 대한 접근 방식이 같았다. 우리는 한 가지 작은 과제에 집중하는 데서 기쁨을 얻었다. 한 가지 과제에 집중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그 시절, 우리는 블루 리본의 현황, 앞으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다. 

 

편지에 답장 안 하는 컨셉 계속 유지


현금, 현금, 현금이 필요해 (1970)

블루 리본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오니츠카의 불안정한 배송, 은행과의 관계로 인해 신경성 안면 경련이 생기기 시작했다. 
블루 리본의 매출은 60만 달러에 육박했지만 현금은 2만 달러도 없었다. 현금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내가 하기 싫은 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일을 하고 말았다. 나는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한테든지 현금을 달라고 졸랐다. 가족, 친구는 물론이고 안면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현금을 빌려달라고 했다. (머스크도 2008년 SpaceX의 수차례 발사 실패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파산 직전까지 갔을 때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닌 전적이 있다. 그는 그때 이혼 소송까지 하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약간 슬퍼졌다)

 

오니츠카는 봄에 선적한 제품을 내가 나중에 받겠다고 하자 겁먹은 것일까? 스파이인 후지모토는 오니츠카가 블루 리본과의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 다른 업체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부도 위기, 그리고 나이키의 탄생 (1971)

기타미의 마음을 잡기 위해 미국으로 초청. 
퍼스트 내셔널 은행의 블루 리본 담당인 월리스에게 기타미를 소개했다. 그런데 기타미는 나를 아주 난처하게 만드는 말을 했다. 왜 블루 리본에 대출을 더 많이 해주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기타미는 사무실에 와서도 블루 리본의 실적이 왜 이모양이냐며 화를 냈다.

 

기타미의 가방에서 서류를 훔쳤는데, 거기에는 미국 전역의 20개에 가까운 업체들과의 미팅 일정이 있었다.
다음 날 그가 다시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문제의 서류를 기타미의 가방에 슬쩍 밀어 넣었다.

 

나는 화가 나고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7년 동안 타이거를 위해 헌신했다. 신제품을 디자인한 것도 우리였다. 


스트레스 해소로 달리기를 주로 함

 

기타미는 돌아와서 해결책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블루 리본 지분의 51%를 사서 인수할 것이며,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판매업자를 찾겠다는 협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가 필요했다. 대체 요원도 없고, 제2안도 없고, 출구 전략도 없었다. 

 

퍼스트 내셔널은 더 이상은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에서 약간의 대출을 해주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그들도 블루 리본의 현금 잔고에 대해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포춘>에서 일본 종합상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일본은 전쟁 후 다시 태어나고 있으며,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닛쇼를 찾아갔다.

 

나는 매일밤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0km 달리기를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혼자 저녁을 먹으면 원기를 회복했다. 나는 매튜가 잠들기 전에 교훈이 되는 옛날이야기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매튜가 잠들면 페니와 나는 그날 하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페니는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할지 물어보곤 했다. 나는 언제든지 회계사로 돌아갈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진지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는 상황 자체가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나만의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안락의자에서 고민하는 거 좋아함)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오니츠카를 신뢰할 수 없고, 기타미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 결국 오니츠카와는 결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공급원을 확보할 때까지 오니츠카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첫 번째 단계에는 무엇을?
- 오니츠카를 판매하려는 업자들을 위협해서 쫓아내야 한다.

두 번째는?
- 오니츠카를 대체할 새로운 기업을 찾아야 한다.

 

문득 아디다스가 멕시코 올림픽 기간 중 관세를 피하기 위해 신발을 만들었다는 멕시코 중부의 '캐나다'라는 이름의 공장을 찾아갔다.
공장은 크고 깨끗했고, 무엇보다 아디다스가 보증하는 공장이었다. 

 

나는 그들의 축구화 3000켤레를 주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브랜드 이름을 물어보자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오니츠카와의 계약에 따르면, 우리는 육상화를 제외한 다른 신발은 다른 회사에서 수입할 수 있었다. 
계약에는 위배되지 않지만 신의가 문제가 되었다. 6개월 전이라면 나는 결코 이런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우시 로고: 광고 전단지 작업을 위해 사무실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젊은 화가에게 35달러 주고 만듦 ㄷㄷ
필 나이트 본인은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팀원들은 마음에 들어 했고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정함

 

브랜드 이름 나이키: 직원들에게 브랜드 이름을 하나씩 제안하도록 함. 이름을 확정해야 하는 마지막 날 제안된 이름이 나이키. 짧고, k나 x 같은 센소리가 들어가 기억하기 쉽고, nike가 승리의 여신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Swoosh의 사전적 뜻은 '휙 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다'이다.


하이라이트 (1972 - 1980)

시카고에서 열리는 스포츠 용품 전시회에서 나이키를 처음 소개했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했다.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를 지닌 제조업체가 되어서 말이다.

 

미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이 열리는 유진에 특별본부를 설치하고 우리 제품을 신어 보기를 원하는 선수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오니츠카와의 재판에서 이김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에서도 버림받고 닛쇼에서 계속 돈 빌림

 

스폰을 받고 나이키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미국의 육상 스타 프로폰테인, 스물넷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

 

1977년 봄, 자기가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일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자기가 설계한 신발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만든 발명품은 러닝화를 위한 에어 중창이었는데, 원래 에어 중창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나면 중창이 납작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러닝을 해본 뒤, 합의를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에어 밑창 기술을 적용한 러닝화를 4억 켤레나 판매했다. 때로는 수상한 전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 큰돈을 벌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였으면 기술 뺏길 걱정에 못할 듯)

 

또 다른 수상한 전화는 소니 바카로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마이클 조던과 계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블로그 참고)

그는 마이클 조던의 스카우터에게 조던은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 전화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전화하는 게 안 되면 찾아가면 되겠네?"

그는 경주마처럼 조던과의 계약을 따내겠다는 목표만을 보고 나아갔다. 체면 따위는 진작 개나 줘버렸다.

그는 내부에서도 여러 선수와 계약할 것이 아니라 조던에게 모든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에어 조던"이다.

 

스티브 잡스도 애플의 야유회에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함

 

1980년, 나스닥 상장. 공모가는 21달러가 제안됐지만 완강히 주장하여 22달러에 상장. 회사에게는 100만 달러의 차이였다.


세상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런데 내가 부자가 되어 있었다.


젊은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 (에필로그)

이제 나는 이 책의 젊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앞으로 당신들이 맞이할 전투에 대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확실한 길은 없다
이러한 사실이 인생을 훨씬 더 흥미롭게 만든다.

 

당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
당신은 그런 일을 할 때조차도 힘든 시절을 보낼 수 있다. 당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시절을 참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라
행운도 큰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행운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道), 정신, 혹은 '하늘의 뜻'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말을 '당신이 열심히 일하면 당신의 도는 더 나아진다'는 뜻으로 이해하라.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런 도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예배에 참석한다. 당신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라. 이런 믿음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져라. 믿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 자신이 규정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조언을 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개인적으로 이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함. 진짜 진짜 중요)
전쟁터는 아주 힘든 곳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최대한 많은 도움을 받도록 하라. 도움을 받는 것은 평생 동안 지혜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당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을 하라
당신의 목표가 직장을 얻는 것, 심지어는 경력을 개발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천직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달아라
능력은 보통이지만 서로 협력하는 두 사람이 능력은 출중하지만 협력하지 않는 두 사람을 항상 이길 것이다.

 

당신의 꿈으로 가는 문이 닫혀 있을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바라보라
당신이 자금을 이 나라에서 조달할 수 없다면, 7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조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닛쇼)

 

창의성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창의적인 사람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심지어는 기인에 가깝다. 어떤 사람들은 양손을 들고 '저 사람은 관리가 안 돼'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사람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도록 하라.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당신의 재능을 썩히지 않으려면 과감하게 모험을 걸어라"
싸우지 않고서는 기술을 익힐 수 없다. 
60년 전에 스탠퍼드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르쳤던 존경하는 프랭크 샬렌버거 교수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그의 제자들과 나에게 주문이 되었다.
"당신이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순간은 당신이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때다. 끝까지 도전하라"

 

위 모든 내용 한 줄 요약 가능:

"당신이 좋아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하라"

 

최고가 되기를
필 나이트

 

 

 

 

 

 

 

 

 

 

 

 

 

 

나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빚을 지면서 살았다. 젊은 기업가 시절에, 많은 사람에게 내가 갚을 수 있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빌린 채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생활에 괴로울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묵묵히 기다려준 아내 페넬로피에게 온 마음을 다해 목청껏 감사의 말을 전한다. 페니는 내가 길을 떠날 때에도, 내가 길을 잃을 때에도 나를 믿고 기다려주었다. 내가 매일 밤늦게 와서 저녁밥이 식어버려도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렸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이 책을 쓰느라고 예전 버릇이 되살아났는데도, 때로는 관심이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또 기다려주었다. 페니는 시작부터 반세기 동안 기다리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내가 악전고투 끝에 만들어낸 책을 페니에게 건네고는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페니, 당신이 없이는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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