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누가 추천했던 것 같다.
나는 신발에 하나도 관심이 없고, 주인공인 필 나이트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책을 읽다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나이키를 만들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일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그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가 상당히 마음에 들게 되었다.
이 책은 풀버전과 10대 버전이 있는데, 도서관에 10대 버전밖에 없어서 그걸로 읽었다.
풀버전은 비즈니스적인 부분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분량은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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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성공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나는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돈일까? 가족? 나는 이런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고 배웠고, 나 자신의 일부는 이런 것들을 본능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심 다른 무엇인가를 꿈꾸고 있었다.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짧고, 한정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시간을 목표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써야 한다. 무엇보다 남들과는 다르게 써야 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승리하고 싶었다.
아니, 남에게 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스포츠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공이 공중에 떠 있을 때, 권투 선수가 종이 울릴 때가 가까워졌음을 느낄 때,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향해 달려갈 때, 관중이 하나 되어 일어날 때, 바로 그런 순간과 함께하고 싶었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기 직전의 숨 가쁜 순간에 명료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바로 이런 명료함이 나의 삶이자 일상이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보다 항상 위대한 육상 선수가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운명의 여신은 내가 좋은 육상 선수가 되는 것은 허락했지만, 위대한 육상 선수가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24살 때 이런 운명에 굴복하고 말았다.
당시 세계는 들끓고 있었고, 일상은 힘들고 때로는 부당하게 여겨졌다. 이런 때는 기괴하고도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꿈을 좇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꿈은 오직 한 가지 목표만 추구하던 운동선수 출신에게는 가치 있고 흥미로워 보였다. 싫든 좋든, 인생은 일종의 게임이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 게임을 거부하는 사람은 방관자로 남을 뿐이다. 나는 방관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내가 미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미친 생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어쩌면 이런 미친 생각이 실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 '어쩌면'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나는 신의 이름으로 이것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할 것이다. 여기 '어쩌면'이라는 말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 시절에 관한 기억 중에서 많은 부분이 그날의 숨소리와 차가운 입김처럼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한 가지 진실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나는 24살 때 '미친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 흔히 갖는 실존적 고뇌,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신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미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다고 믿었다. 미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책, 스포츠, 민주주의, 자유기업)은 미친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시작됐다.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만큼이나 미친 짓도 흔치 않다. 달리기는 고통스럽고 위험한 운동이다. 보상을 적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확실하게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도로를 달릴 때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이런 노력을 충분히 보상해주지 않는다. 오직 달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결승선을 정해주지 않는다. 당신만이 결승선을 정할 수 있다. 당신은 달리기를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당신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달리기에 빠진 사람은 이런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은 달리기를 계속 하지만, 이것을 왜 하는지는 잘 모른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혹은 격렬한 흥분을 느끼기 위해 달린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대안, 즉 달리기를 그만두는 것이 끔찍하기 때문에 달리고 있을 뿐이다.
1962년 새벽, 나는 스스로 이렇게 선언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자.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미친 생각
육상선수였던 필은 러닝화에 관심이 많았고, MBA 시절 일본의 러닝화가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도서관에서 수입, 수출, 창업에 관한 자료를 보이는 대로 다 읽고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친 생각'은 세계를 배낭여행하며, 도중에 일본 신발을 수입해서 미국에서 파는 신발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인의 90%는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칠 때면 달리기를 함
하와이에 갔다가 너무 좋아서 바로 여행 그만두고 정착함. (뭐임?)
백과사전을 파는 영업 알바를 했는데, 소심했던 필은 소질이 없었고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거절당하면 쉽게 상처를 받는 편이라고 한다.
알바를 그만두고 했던 것은 당시 저명한 사업가였던 콘펠드가 이끄는 회사에서 채권을 파는 일이었다.
콘펠드는 직원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주문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 직원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들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리더십)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MBA 출신이었으므로 내가 판매하는 펀드에 관해서는 잘 알았다.
게다가 나는 진실을 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점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불편한 순간이 다가왔다. 원래 계획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 문화를 되게 좋아했고 이런저런 종교 서적을 많이 읽음.
필은 염두에 두고 있던 오니츠카 타이거 (지금의 아식스) 공장을 찾아갔다. 누군가가 어느 회사에서 왔는지 묻자 '블루 리본 스포츠'에서 왔다고 했다. 자신의 방에 육상 선수 시절 영예의 표시로 받은 블루 리본들이 많았기 때문에 갑자기 떠올랐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회사 이름도 안 정하고 웨스트사이드 땅을 사러 간 트럼프가 생각났다)
MBA 시절 보고서에 작성했던 내용을 그대로 설명했다. 미국에서 아디다스보다 저렴하게 판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미국 신발 시장의 전망을 물었다. 나는 앞으로 10억 달러 규모는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숫자를 말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놀랍게도 그들이 나에게 제품을 팔려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우리는 동업자가 됐다. 나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호호 히히...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낭만 지리네)
공자 왈, "산을 움직이려 하는 자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하느니라."
세계를 여행하면서 어느새 나는 사람들의 신발을 관찰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음
그는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장소에 많이 간 것 같다.
그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에 도착했는데도 신발 샘플이 오지 않자 아버지의 친구인 어떤 CEO의 조언을 듣고 회계사 자격을 따 회계법인에서 일함
(세상은 인맥빨인가...)
자동차에서 신발을 팔다 (1964)
내 육상 선수 시절의 바우어만 코치는 남한테 지는 것을 싫어했다. 나는 이런 점을 그에게서 배웠다.
신발의 경량화는 그가 평생을 걸고 추구하는 목표였다.
그는 자신을 '경쟁적 반응을 가르치는 교수'로 생각했다.
그가 하는 일은 선수들의 경쟁심을 자극해 오리건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2학년 때였다. 나는 힘든 일정 때문에 몹시 지쳐 있었다.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연습을 하고, 밤새도록 숙제를 해야 했다. 어느 날 독감에 걸린 것 같아서 바우어만 코치 사무실에 들러 오후 연습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뭐라고? 자네 팀 코치가 누구지?"
"바우어만 코치님이십니다."
"그래, 팀 코치로서 말하겠는데, 지금 당장 운동장으로 가. 오늘은 타임 트라이얼을 하기로 한 날 아닌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모든 감정을 달리기에 쏟아부었다. 그날 나는 개인적으로 그해 최고 기록을 세웠다. 트랙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코치를 노려봤다. '이제 됐냐?' 그는 스톱워치를 확인한 뒤, 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를 시험했다. 나를 신발처럼 해체하고는 개조했다. 그리고 나는 견뎌냈다. 이후 나는 그가 말하는 진정한 '오리건의 남자'가 됐다. 그날부터 나는 타이거가 됐다.
바우어만과 반반씩 투자하고 동업함. 그는 경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분은 51 : 49
아빠한테 돈 빌려서 운동화 300켤레 주문하고 독점 판매권 얻고 회계 법인에 사표 내고 트렁크에 신발을 싣고 팔러 다녔다.
(근데 뭐 엄청난 지원을 받은 건 아님 ㅇㅇ)
판매 전략은 간단했고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나는 몇몇 스포츠용품점에서 거절당하고는 ("이 봐, 세상에 흔해빠진 게 운동화야!"), 육상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은 모조리 찾아다니기로 결심했다. 나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코치, 선수,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가져온 신발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반응은 거의 똑같았다. 나는 주문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림버 업(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의 모델명)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백과사전과 펀드를 파는 일이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좋았다.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때로는 타이거가 몹시 갖고 싶어서 나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예상치도 않게 우편 주문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순식간에 신발을 팔아치우고 900켤레를 추가 주문.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할 때 아버지가 보증을 서 주었다.
나에게는 존경할 만한 동업자와 탄탄한 은행과 함께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제품이 있었다. 사업은 날로 발전했다.
어떻게 캘리포니아까지 신발을 가져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항공 요금을 감당할 형편이 안 됐다. 그래서 나는 2주마다 한 번씩 원통형 군용 배낭에 운동화를 잔뜩 넣고서 빳빳하게 다림질한 군복 차림으로 지역 공군 기지로 갔다. 헌병들은 군복을 보고는 손짓으로 샌프란시스코나 LA를 향해 가는 군용 수송기에 짐을 싣도록 안내해 주었다. (그는 군대에서 1년 동안 복무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진짜 미친놈인 듯)
근데 미국에서는 뭐든지 인맥이네... 네트워킹 ㅈㄴ 중요한 듯;;
경쟁의 기술은 망각의 기술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육상 경기를 통해 배웠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때의 교훈을 상기시켰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잊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품었던 의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과 과거를 잊어야 한다. 우리는 '한 발짝도 못 뛰겠어'라는 내면의 외침, 애원을 무시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거나 떨쳐버리거나 무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오니츠카 타이거의 미국 독점 판매권을 부여받은 문제로 일본에 항의하러 가면서 <일본인과 사업하는 방법>을 읽었다.
후지산에 올라갈 때 반바지와 티셔츠만 입고 올라가서 너무 추웠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에게 코트를 3달러에 사고 싶다고 제안했다. (미친놈인가?)
나는 일본에서는 거래를 하는 족족 성공했다!
자기 자본 딜레마 (1965)
1965년에만 하더라도 달리기는 스포츠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달리기는 인기 종목이 아니라 그저 그런 종목이었다. 그때는 운동장이 아닌 곳에서 5000미터를 달리는 것은 미친 사람이 미친 에너지를 발산하는 짓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존슨은 펩시콜라를 여러 번 뒤집어썼다.
블루리본은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데도 은행 측은 이를 걱정스러운 추세라고 단정 지었다. 자기 자본에 비해 매출이 너무 빨리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 은행은 지금의 투자 은행과는 달랐다. 그들의 근시안적인 사고는 현금 잔고 수준을 벗어나는 성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신은 육상 선수에게 너무 빨리 달린다고 야단치는 것과 같아요."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고 내 마음대로 타이거 운동화를 두 배나 늘려 주문한 뒤에 은행을 찾아가서 신용장 발급을 요청했다. 나는 은행 직원을 구슬리기도 하고, 굽실거리기도 하고, 협상하기도 해서 결국 대출 승인을 받아냈다.
나는 신발을 팔아 대출금을 모두 갚고 다시 그 짓을 되풀이했다. 이전의 두 배만큼 주문하고, 은행에 정장을 입고 해맑은 표정을 짓고서 찾아갔다. (확실히 사업을 하려면 배짱이 좋아야 함)
보수적인 은행들, 매번 신발을 늦게 보내는 오니츠카 때문에 불투명한 미래를 감안하여 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회계 법인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리고 월급의 상당 부분을 블루리본에 투자해 현금 잔고를 증가시켰다.
나는 회계 장부를 통해 고객 기업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사라졌는지, 어떻게 제품을 팔고 어려움에서 빠져나왔는지, 무엇이 기업을 움직이게 하고 망하게 하는지 자세히 기록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본 부족이 기업이 망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
그는 블루리본에서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았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경제가 안 좋은데 회사를 차린다고? 그것도 신발 회사를? 게다가 현금 잔고는 제로 수준이고?"
하지만 나한테 유리한 조건이 한 가지 있었는데, 육상계의 전설적인 코치인 바우어만과 동업 관계라는 것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코치로 참가한 바우어만은 오니츠카를 방문해 회장과 친해졌다.
오니츠카 회장은 스시를 먹다가 문어 다리를 보고는 빨판의 디자인을 밑창에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영감은 흔해빠진 것에서 올 수도 있다.
미국인들은 일본인들과 신체적으로 달랐다. 바우어만은 미국인에 맞는 디자인을 제작하려고 했다. 그는 신발 개조 실험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자기 육상 팀의 젊은 선수들을 실험용 쥐처럼 이용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노트와 함께 일본으로 보냈다.
바우어만은 신발뿐만 아니라 스포츠 음료, 트랙의 재질까지 바꾸려 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폴리우레탄까지도 발명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어떻게 이처럼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선수들을 지도하고,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장에 가고, 실험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등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투덜거렸다. 심지어 그는 책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늙으신 코치는 엷은 독자층을 겨냥하고 계셨다. 세상에 어느 누가 조깅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하겠는가?
동부 카우보이와 벌인 전쟁 (1966)
필과 육상 동기이자 필이 신발을 팔 때 우연히 만난 존슨은 엄청나게, 진짜로 엄청나게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직원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필을 끈질기게 설득해서 정직원으로 입사했고, 답장을 하지 않는 필에게 항상 산더미 같은 편지를 보냈으며, 광고를 만들기 위해 집에 간이 사진관까지 만들었다. 그는 일주일에 7일 일하며 블루 리본을 선전하고 타이거를 판매했다. 게다가 수많은 구매자들과 편지까지 주고받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존슨 이 사람이 ㄹㅇ 보물임...)
당시 나는 처칠, 케네디, 톨스토이의 전기와 장군, 사무라이, 쇼군에 관한 이야기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발휘되는 리더십에 매료됐다. 사업은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영웅은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섬세한 점까지 관리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줘라. 그리고 그들이 이루어낸 결과로 당신을 놀라게 하라."
구매자들은 편지로 존슨에게 신발에 대한 피드백을 주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우리는 동부에서의 판매권이 없었다. 그러나 존슨은 동부의 수많은 사람들과 거래했고 나는 그를 놔두었다.
블루 리본이 파산하면, 나도 파산해 한 푼도 없는 거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음 사업에 써먹을 아주 소중한 지혜를 얻을 것이다. 지혜는 무형의 자산이지만, 그래도 사업에 따르는 위험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자산이다. 블루 리본에서 얻은 경험은 앞으로 인생의 또 다른 위험에서 보다 더 확실한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만약 실패할 운명이라면 가급적 빨리 실패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어렵게 얻은 교훈을 써먹을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목표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목표는 그것이 '실패할 거라면 빨리 하자'는 마음속의 구호가 될 때까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존슨에게 6월 말까지 3250켤레를 팔면 소매점을 열어주겠다고 적었다. 그는 목표를 달성했다. 존슨은 그 가게를 육상 선수들의 성역으로 바꾸어놓았다. 안락의자를 구입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육상 선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을 꽂아놓고, 벽을 타이거를 신은 선수들의 사진들로 도배하고, 프런트에 타이거 운동화를 새겨놓은 티셔츠를 비치하고는 고객들에게 나눠주었다. (얘가 진짜 난 놈임;;)
그러나 동부 카우보이(동부의 판매권을 갖고 있는 사람)가 돌아와서 타이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고객 기반을 한꺼번에 낚아채려 한 것이다.
동부 카우보이를 처리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감. 그것도 존슨의 결정.
오니츠카의 수출과장 기타미는 나에게 방문한 이유를 물었다. 그제야 나는 자신만만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가 회사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새로운 일을 맡았고 아직 많은 자산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갑자기 자기 자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또한 내가 기타미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큰 고객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은 고객도 아니었다. 위치는 정말 중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미국에서 신발을 팔고 있었다. 미국 시장은 오니츠카의 미래에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아마도 기타미는 지금 당장은 나를 잃고 싶지 않을 터이다. 이 말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은 카드를 쥐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도 거래의 기술이 있음)
나는 동부 카우보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블루 리본의 성과를 발표하며 미국 전역의 독점 판매권을 요구했다. 기타미는 간단명료하게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양을 소화할 수 있는 크고 탄탄한 판매업자를 원했다. 그들을 안심시키려면 동부 지역에도 사무소가 있어야 했다.
나는 잔뜩 흥분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희 블루 리본도 동부 지역에 사무소가 있습니다."
"아, 그래요?"
"네. 우리는 동부, 서부에 사무소가 있고, 곧 중서부에도 사무소를 열 계획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판매할 역량이 됩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환해졌다.
며칠 후 그들은 3년의 독점 판매권을 부여했다. (깡 미쳤네. 괜히 사장이 아니구만)
5000켤레에 대한 주문서에 사인할 때,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보이려고 했다. 그만한 수를 주문할만한 돈이 수중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보낼 동부 지역 사무소 또한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타미에게 동부 사무소의 정확한 주소를 전보로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신발에 미친 괴짜들 (1967)
존슨의 반응이 두려워서 동부 사무소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동부 사무소를 담당할 사람을 구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다. 나는 존슨을 동부에 보내고 서부에 그를 대체할 사람을 뽑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 존슨은 깜짝 놀랐다. 신발은 곧 뉴욕항에 도착할 것이었고, 블루 리본의 운명은 존슨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존슨은 동부 사무소를 꾸려나갈 사람이 자기 말고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나는 그저 잠자코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거 좋아하네 이 사람)
드디어 존슨이 말했다. "좋아, 가겠어."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
"그런데 어디야?"
"어디라니?"
"나보고 가라고 했잖아?"
"동부 지역이라면 어디든지 괜찮아."
좀 더 의논한 결과, 보스턴이 좋을 것 같았다. (진짜 대책 없는 미친놈이다)
존슨이 무척 고마웠다. 그가 더욱 좋아졌다. 이제까지 내가 존슨을 무성의하게 대한 게 후회됐다.
답장 없는 수많은 편지들. 누가 봐도 존슨은 신뢰할 만한 팀플레이어였다. (그걸 이제 알았냐)
그런데 며칠 후, 존슨이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협박했다. 그의 요구사항은 자신을 정식 동업자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대화에 자기 아버지인 오언이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오언이 이번 반란의 조종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기여를 인정했지만, 블루 리본에는 부채가 많으며 바우어만이 지분을 양도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월급 50달러 인상을 제안하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냥 그만두라고 했다. 그는 나를 제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슨은 나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그런 자유방임형 경영 스타일이 오늘날의 존슨을 만들었다. 그는 고민하더니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10km 달리기와 함께 협정에 서명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날 달리기의 승자는 바로 나였다.
나이키의 첫 신발이자 지금도 유명한 코르테즈 모델의 아이디어를 바우어만이 내서 오니츠카 타이거에서 생산했다.
나는 아디다스에 대해 병적인 반감을 가져왔다. 나는 날마다 그들을 올려다보고 그들이 멀리 앞서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이 싫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짐 그렐리라는 친구를 생각나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렐리는 오리건에서 가장 빠른 육상 선수였다. 나는 두 번째로 빠른 선수였다. 나는 4년 동안 그의 등만 쳐다봤다. 아디다스는 제2의 그렐리였다. 그런 아디다스가 나에게 법적 제재를 가하려고 하는 것이 나를 끝없이 짜증 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트럼프도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리더의 특징인 듯)
그 와중에 바우어만 코치의 조깅에 관한 책이 나왔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00만 부나 팔리며 조깅 열풍을 일으켰다.
그 책 덕분에 달리기는 더 이상 컬트가 아니고, 쿨한 놀이가 됐다. (인복은 미쳤다)
나는 아디다스를 뒤쫓고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바우어만 코치를 뒤쫓고 있었다.
육상 선수시절처럼 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존슨그냥개미친개사기직원이네어떻게저런사람이그냥굴러들어온담?그냥말이안됨;
존슨에게서 자기가 새 사무실에서 먹고산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는 동부 사무소를 웰즐리에 차렸다. 보스턴 마라톤 코스가 웰즐리를 관통했다. 이제 거기서 신발을 파는 일만 남았다. 그는 처음에 고객 카드에서 고등학교 육상 스타인 고객의 집을 예고도 없이 찾아갔고, 같이 식사를 했다. 다음 날, 존슨은 그 가족들과 함께 조깅을 하고는 이 지역의 육상 코치, 잠재 고객, 연줄이 될 만한 사람들의 명단, 사무소를 차릴 만한 장소의 리스트까지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동부 사무소이자 거주하는 집으로 이용할 작은 집을 찾아가 월세 계약을 했다. 나는 이번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컨셉 지독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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