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 카지노 쟁탈전
힐튼 사의 관계자들이 지나치게 독선에 빠져 있었던 점이 함정이었다. 그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으로 마치 자신들이 애틀랜틱시티에 은혜나 베푸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카지노 허가를 받으려고 신청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허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은 신청자가 져야만 했다. 힐튼은 이 점을 간과하고 너무 자신만만하게 굴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힐튼의 두 번째 실책은 사전에 신청을 받아낸 사람들의 경험을 무시한 점에 있었다. 플레이보이 사는 3년 전 조직범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소문난 시드니 코샥이란 변호사와의 관계 때문에 신청을 기각당했는데, 그 변호사는 힐튼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경우 중요한 문제는 카지노 관리위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힐튼은 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다음에야 그를 해고했으며, 심지어 "당신들의 명백한 반대 표시 때문에 나는 그를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카지노 관리 위원회의 청문회 기간 중 힐튼의 경영 간부들은 누구 하나 코빼기조차 내보이는 법이 없었다.
힐튼의 배런(아들 아님)은 애틀랜틱시티에서 맛본 좌절감을 털어놓았고 나는 그의 심적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배런은 신중한 사람이었고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편이었다. 그는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며 따라서 나 역시 조심스럽게 화제를 이끌어갔다. 우리는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잘 어울렸으며 나중에 벤은 내가 무척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공격적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으나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때도 있다.
만약 내가 배런이었다면 스티브 윈의 경영권 침탈에 끝까지 저항했을 것이다. 나는 매사 그런 식으로 결정해 왔다. 나는 다른 사람의 도전을 받았다고 판단하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고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싸워나갔다.
나는 힐튼의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호텔을 2.5억 달러에 사겠다고 운을 뗐다. 그는 그전에 설비 투자에 3.2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던 적이 있었다. 며칠 뒤 나는 3.2억 달러를 내겠다고 통보했다. 이런 종류의 협상에서는 너무 약삭빠르게 굴면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으며, 가능한 한 빨리 매듭짓는 것이 유리했다. 나는 그 가격으로 사거나 아니면 포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그에게 보냈다.
나는 친한 친구이자 하노버의 회장인 존 토렐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3.2억 달러를 빌린다는 약속을 했다. 우리는 많은 거래를 하면서 신의를 굳혀왔으므로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신용이 얼마나 귀중한 재산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대신 직접 채무에 대한 보증을 써주는 전례 없는 조건을 제시해 그의 성의에 보답했다.
이 거래는 완전히 나의 배짱에 힘입은 것이었다. 나는 힐튼이 짓고 있는 카지노 호텔을 구경 한 번 하지 않았었다. 동료들은 공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라고 충고했지만 나는 힐튼의 혼란 속에 내 모습을 들이미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면 정신 나간 짓이라고 꾸중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경영만 잘해나간다면 얼마든지 이익을 거둘 수 있을 만큼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시장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의 굽힐 수 없는 신념이었다.
갑자기 힐튼 측의 변호사들은 합의를 끝낸 문제들에 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협상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그들이 협상을 깨뜨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사 완공에 대한 보증 문제를 합의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협상을 깨뜨렸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 점잖게 협상 테이블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나는 협상을 관철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방법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나는 그들이 계속 애매한 태도를 취할 경우 공격적인 자세로 그들의 그러한 태도를 비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 나와 거래를 하기로 굳게 약속한 뒤 어떻게 그 약속을 파기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3일간 계속 협상을 해놓고 한마디 해명도 없이 발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변호사 비용만으로 이미 수십만 달러를 들였다. 그런데 그들이 계속 거래를 파기하려는 입장을 보인다면 그것은 몰염치한 짓이었다. 아니 비도덕적인 일일 뿐 아니라 명예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파렴치한 짓이라고 나는 차근차근 따져 들어갔다. 나는 얼마든지 언성을 높여 그들을 나무랄 수 있었으나 이런 경우에는 큰소리치는 것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었다. 거래의 대부분은 이미 협상을 거쳐 합의점을 찾았기 때문에 공연히 힐튼 측이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물론 그들은 가능한 한 돌발 사고라도 일어나 이 거래를 파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러한 속셈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했다.
계약서에 서명한 나는 즉시 모든 직원들을 공사 현장에 투입시켜 철야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남들이 1년 이상 걸려야 해낼 수 있는 일을 앞으로 6주일 이내에 완성할 계획을 세웠다. (like 일론 머스크)
처음 생각해 낸 이름은 트럼프 팰리스였으나 시저스 팰리스 측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는 바람에 트럼프 캐슬로 바꿨다. 트럼프 팰리스란 이름으로 수백만 달러를 들여 기껏 광고를 한 뒤에 상호를 바꿀 수밖에 없을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채무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채권 발행. 계속 보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다.
트럼프 캐슬의 경영을 아내 이바나에게 맡김.
카지노 자체에 대한 경험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일반적인 경영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트럼프 파크: 세계가 주목한 초호화 콘도미니엄
부사장 루이스 선샤인이 뉴욕 시내의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두 건물을 매입하자는 제안을 했다.
바비존 플라자 호텔은 기껏해야 손익이나 맞추는 정도의 중급 호텔이었고, 100번지 건물은 임대료 규제를 받는 아파트틀로 가득 차 있어 그 정도 임대료 수준으로는 건물의 운영비에도 미치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한 요인들 때문에 매우 싼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그 건물들이 매매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약점을 구실로 싼 가격에 거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동산 거래에서 가장 쉬운 일은 물건을 사는 일이다.
뉴욕 시내의 썩 좋은 위치에 살고 있는 그들은 안간힘을 다하여 이주에 반대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일의 시작부터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내가 그러한 계획의 실천에 직접 나섰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었다. 과거에는 언제나 스스로 나서서 일을 처리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집을 비워달라고 설득하는 따위의 일은 내가 그리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입주자들의 이주를 위탁한 시터들 사에 입주자들이 입주해 있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중단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다른 악덕 건물주들처럼 폭력배를 고용하여 보일러나 계단 등을 때려 부수거나 범죄자들을 입주시킨 다음 입주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협박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 명성을 더럽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처럼 완전 막 나가기 시작한 건 망했다가 재기한 이후)
나는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수위들의 유니폼을 회수하고, 복도의 전구들을 전력 소비가 낮은 것으로 교체하는 그런 방식으로 연간 몇 천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빌딩을 더 경제적으로 운영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퇴거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그들이 주장하고 나설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운영비를 줄이려는 의도'로 발뺌할 수 있을 만큼만 수행했을 것이다) 시 당국이 한참 고민 중인 무주택 문제의 일시적 해결을 위해 빈 방을 무주택자들에게 잠시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ㅋㅋ)
입주자들은 나를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여론의 비난 따위가 두려워 계획을 중단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상대방의 공격이 부당하다고 느낄 때는 더욱 그러했다.
근데 결국 못 쫓아냄. 뭐임;; 그 사이에 부동산 시세가 많이 올라서 어쨌든 이득 봤다 엔딩;; 걍 허세였네;;
건물 중 하나인 바비존 플라자 호텔은 개축해서 돈 많이 범. 개축 전 맞은편의 세인트모리츠 호텔을 매입했다.
바비존 플라자 호텔이 문을 닫고 있을 때도 손님이 그쪽으로 흡수됐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세인트모리츠를 인수할 때는 꽤 오래 걸렸는데, 그들이 매우 비싼 값에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원매자들도 많이 만났지만 끝내 타협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트럼프가 적정가에 샀다. (기다리기의 신)
여기까지 읽으니 그의 방법이 얼추 보인다.
그는 기회를 항상 모색하고, 올인하지 않고, 리스크를 많이 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많은 일들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지지부진한 건은 질질 끌 수 있다. 상대방이 급한 상황이라면 이런 방법이 더욱더 잘 먹힌다. 그러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게 된다.
또한 처리가 어려운, 그러나 성공하면 큰 리턴을 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싸게 산 뒤 자신의 협상력과 인맥, 자금력, 어그로력을 동원해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로 만들고 매우 비싸게 판다.
나는 하던 것을 멈추고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다. 나는 항상 한 가지의 일만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벌려놓는다. 일론 머스크도 여러 개의 사업을 동시에 관리함과 동시에 수많은 아이들까지 있다.
USFL의 봄과 가을
이 책에서는 이유가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사실 NFL 구단주가 되고 싶었는데 거부당하고 빡쳐서 USFL로 NFL을 무너뜨리려 함
NFL 역사상 가장 성공한 코치인 돈 슐라와 접촉했는데, 그는 트럼프 타워에 있는 아파트를 요구했다. 나는 즉시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파트 장사를 허술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식축구팀을 인수할 수가 있었는데 아무리 유명한 코치에게라도 아파트를 거저 줄 수는 없었다.
나에게 위원회라는 것은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위험 부담을 회피코자 만드는 조직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위원회보다 자문회사를 더욱 싫어했다. 비싼 용역비를 들여가며 운영 돼오던 특별위원회는 한창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그즈음에 납득할 만한 상식과 투자된 돈에 상응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나는 여론조사 따위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3단 콤보)
그냥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친 듯이 추진하면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따라올 수밖에 없음;;
USFL을 가을로 옮기자는 투표가 표결된 게 어이없다.
자기 팀, 그리고 USFL의 핫한 유망주였던 플루티의 계약 비용을 모든 USFL 팀들이 공동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제의했다. 그들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의도는 분명했다. 중류급 쿼터백에 의존하고 있는 약한 팀들 때문에 리그 전체가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그린란드, 캐나다 합병 발언이랑 비슷한 느낌. 트럼프 주특기)
나는 USFL 총재인 어셔에게 "왜 당신은 언론에 대한 홍보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까?"하고 따졌다. 그는 언론보다 배심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재판에 관계되는 보도나 기사를 시청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나 사실상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대중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선을 다하라
그러고도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곧바로 다음 일에 몰두하라
아이스링크의 재건
나는 아무런 기본 계획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느 날 무료함에 싫증이 난 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트럼프 타워 아파트에서 바로 울먼 링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 공사에 이미 수백만 달러가 들어갔지만 수년동안 공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시 당국은 공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스케이트장 공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마천루 빌딩을 완공하는 데 2년 반이 걸렸다면 스케이트장은 수개월이면 족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이 이미 난관에 빠졌을 때인 2년 전에 나는 사업 책임자 헨리 스턴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런 대금도 받지 않을 테니 공사를 나에게 맡기라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한 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나는 다시금 그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은 제안을 되풀이했지만 전과 똑같은 응답이었다.
뉴욕 시장 에드 콕에게 서한을 보냈다.
"저는 이 스케이트장을 신축하여 금년 11월까지 문을 열겠으며 스케이트장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것을 제의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 스케이트장을 공정한 임대료를 내고 시 당국으로부터 임대받아 공정하게 운영하고 싶습니다."
그는 나를 조롱하는 듯한 회신을 보내고는, 그것을 언론에 공개했다.
내 제안을 공개적으로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리면 내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출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그는 언론의 반응을 과소평가했다. 우선 언론은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 논전을 전개했다. 그들은 극단적인 얘기들을 좋아한다. 이 스케이트장을 둘러싼 이야기는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아마 가장 중요한 점은 많은 기자들이 자신들은 공중을 보호하는 쪽에 서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짓만큼 기자들을 격분케 하는 것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울먼 링크의 공사를 시가 계속 담당하면 시민들의 세금이 더 들고 개장이 더욱 늦어질 것이므로) 언론들이 하나같이 내 편을 드는 데 대해 나 스스로 아연질색할 지경이었다.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정치인들을 움직이도록 보장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공포'라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정치인들에게 갖가지 압력을 넣거나 청원과 위협을 하거나 선거운동에 돈을 대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악평을 게재할 수 있는 언론을 들먹여보라. 비록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인쇄물일지라도. 그러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펄쩍 뛰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에드 콕 시장은 순수하고 단순하면서도 강약약강이다. 이런 사람들은 때때로 거칠게 행동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겁쟁이들이다. 이들이 약점을 들춰내고 멸시하는 대상은 대개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거꾸로 강인하고 유능한 사람은 아무리 힘든 목표와 대상이든 기어코 극복해내고야 만다. 콕과 같은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움츠러든다. 확실히 여론이 콕을 물고 늘어지자 그는 완전히 움츠러들어 나에게 사업을 맡아달라고 싹싹 비는 것이 아닌가.
나는 스케이트장 건설에 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최고급 스케이트장 건설 전문업자를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추천하는 일류 중의 일류 업체는 토론토에 있는 침코(cimco)라는 회사였다. 나는 이 회사의 최고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아주 기본적인 의문점부터 물어보았다. "대형 옥외 아이스링크를 건설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울먼 링크를 짓는 데 소금물 시스템을 제빙 설비로 쓰기로 결정했다.
내가 울먼 링크 개축 공사를 떠맡은 지 일주일 만에 울먼 링크 건설을 둘러싼 지난 6년간의 시행착오를 정리한 시청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내가 이 공사에 소요할 기간의 4배나 되는 15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보고서가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책의 사례들을 열거하면서도 그 실책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앞으로 그 같은 착오를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대책에 관해 아무런 언급을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작업에 담당자의 이름을 붙이는 일론 머스크)
나는 몇 년 전 이 링크 옆을 걸어가고 있던 때를 회상했다. 오후 2시쯤에 공사가 끝나지 않은 링크 한가운데에 30여 명의 일꾼들이 있었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일하는 이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약 1시간 후에 다시 링크를 지나 걸어갔다. 똑같은 일꾼들이 똑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울먼 링크가 가진 더 큰 문제의 조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거기에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지도력은 모든 일이 되도록 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열쇠 같은 것이다. 우리가 링크를 개수하는 과정에서 내가 현장을 감시하지 않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우리는 공사에 착수하기 전에도 언론기관들로부터 진척 상황을 알려달라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10여 차례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기자회견을 갖기로 결정했다.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기자회견까지 가진 것은 지나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기자들이 이 사업에 관해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갖기가 불가능했다는 사실만을 얘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울먼 링크에 관한 이야기가 지역적 관심을 촉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타임> 지는 행정부의 무능과 능률적인 사기업의 힘을 대비시킨 아주 잘 읽히는 기사를 게재했다.
콕은 우리가 어떻게 시 당국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었는가에 관해서 해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엘리트 직원들과 함께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서 곤궁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데리고 일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을 소홀히 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와 다시 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듯이 한 업자가 시청 관리에게 와서 말한다. "미안합니다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100만 달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누구 하나 따지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공사에 대해서 뭔가 아는 사람이 시청에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것은 실책에 대해 시청 관료 중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시 당국의 무능에서 이득을 보는 집단은 사업을 맡은 사람들이다. 공사가 예산을 초과할 경우 업자는 떼돈을 번다.
울먼 링크의 운영에 관해서도 또다시 나는 가장 우수한 경영인을 찾아냈다.
'텔레비전 시티' 프로젝트
나는 여러 사업에 몰두하기보다는 하나의 중요한 사업을 추진하는 데 모자람이 없도록 막대한 현금을 조달했다. 또한 사업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은행들은 무슨 사업을 하든 기꺼이 융자를 해주었다. (추진 자체는 여러 개를 동시에 해도 현금 조달은 집중적으로 한다는 말인 듯?)
웨스트사이드 부지 개발을 맡은 마크리 진영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주로 교량 건설로 돈을 벌었으며, 뉴욕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들은 시작부터 중대한 오판을 했다. 교량 건설은 소요 예산을 산정하고 그것을 근거로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뒤, 예산에 맞춰서 공사를 추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주택 사업은 완전히 다르다. 건축비는 추정할 수 있으나 수입은 판매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계산할 수가 없다. 비용을 적게 쓸수록 나중의 위험이 줄어든다.
시는 사업 승인을 내주는 대가로 이것저것 많은 기부금을 받고 싶어 했다. 마크리는 1억 달러 이상을 남에게 선선히 내준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더욱 안 좋았던 점은 건물 한 채 짓기도 전에, 아파트 한 채 팔기도 전에 약속한 돈을 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합의해 준 개발 계획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마크리의 적은 자신 뿐이었다.
건설만 할 줄 알지 거래를 할 줄 모름
그의 마지막 실수는 건설 계획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이다. 4년이나 그 끔찍한 땅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 신문에는 그 계획에 관한 기사가 한 줄도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그 계획이 미국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잠재적으로 중요한 사업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발 지역에서 수천 가구분을 팔기 위해서는 물건이 특별해야 하고 아주 적극적인 판매 전략을 갖춰야 한다. 마크리는 두 가지 모두 갖고 있지 않았다.
마크리가 내게 땅을 넘긴 이유 중 하나는 확신하건대 그 거래 전부터 내가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1984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땅을 내게 넘기기로 잠정 합의를 하고 구매취지서에 서명을 했다. 구매 취지서는 법적 구속력이 별로 없지만 무효로 하려면 재판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몇 달 후 마크리는 구매취지서를 철회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거절했으나 한 번 만나자는 제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를 만나 서류철에서 구매취지서를 꺼내 그가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팔고 싶은 생각이 들면 제일 먼저 나를 생각해 주시오. Good luck." (일부러 한 번 거절하고 퍼포먼스까지. 미쳤다)
나는 마크리와 달리 경제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계획에 대한 승인을 얻을 때까지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필요하다면 다른 시 당국에도 의사를 타진할 요량이었다. (기다리고 협상하는 건 주특기)
맨 먼저 할 일은 시에서 내 개발 계획을 승인하도록 하기 위해 나의 사업을 기대가 되는 매력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거래는 쌍방이 이익을 볼 때 잘 이루어진다.
그의 계획:
NBC가 본부를 이전하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봄 → 그럴 경우 뉴욕 입장에서도 손해 → 싼 가격으로 NBC에 웨스트사이드 부지로 이전할 것을 제안 → 그것을 빌미로 뉴욕 시에 세금 감면을 요구
궁극적으로 NBC가 거절하더라도 영화 스튜디오를 짓기에 기가 막힌 장소였다.
그래서 NBC로부터 확약을 받기도 전에 건축 계획을 설계하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로 애써야 할 일은 사람들이 나의 계획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많은 건축업자들은 기껏해야 건물을 지은 뒤에나 광고를 한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계획하고 있었다.
다음 할 일은 열정적인 건축가를 찾는 일이었다.
리처드 메이어는 뉴욕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추종자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정력적이지도 않고 열성적이지도 못하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사색하고 분석하고 논리를 따지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다. 나는 좀 멋을 부렸고 선전에 아주 능했으며 사업에 대한 안목이 높았던 헬무트 얀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세부 사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신 그들은 센세이셔널한 측면을 찾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나는 밀집도 및 교통 문제 그리고 여러 건물의 복합 문제 등에 관해 답변 준비를 했으나 기자들은 세계 최고의 빌딩에 관해서만 알고 싶어 했다. 그 때문에 나의 계획은 즉각 신비로운 대상이 되었다.
충분히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반응은 모두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논란이 생김으로써 그 계획은 계속 보도되었다.
폴 골드버거의 비판 요지는 나의 계획이 주위 환경과 충분히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점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항이었다. 나는 주위와 뒤섞여버리는 건물은 최대의 실패작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코모도어 호텔을 개축할 때도 반사유리로 외부장식을 한 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비평가들까지 생각을 바꾸었었다.
결국 뉴욕 시 당국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계획은 무산되었다.
나는 웨스트사이드에 건물을 짓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좀 더 기다려서 구획 허가를 얻을 수도 있다. 결국 나는 NBC와 함께 아니면 없이 텔레비전 시티를 지을 것이다. 그리고 현 행정부와 협력해 짓거나 없이 지을 수도 있다.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왜냐하면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그것이 나 자신을 진정으로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건재하다면 나는 그곳에 대규모 아파트를 지어 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쇼핑센터를 지을 수도 있다. 나는 아무튼 그곳을 매우 잘 이용할 것이다. (선택권을 최대화하라)
다른 거래들
이 책의 첫머리에서 내가 거래를 행하는 것은 단지 거래 그 자체를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현재 얼마나 많은 거래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무엇을 성취해냈느냐에 의해 평가된다.
우리는 호주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카지노의 운영을 맡을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되긴 했으나 나는 마지막 순간에 더 좋은 생각을 해냈다. 뉴욕에서 비행기로 2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는 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바로 코앞에도 신경 쓸 것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여 볼 때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최종 결정이 발표되기 직전에 나는 입찰을 포기했다.
나는 농담으로 데이비스는 나의 리조트 매입 거래를 끊어버리려고 애쓰는 데 낭비할 시간을 몸무게를 줄이는 데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데이비스가 대단히 분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적들에게까지 구태여 상냥한 태도를 보이려고 애쓰지는 않는 편이다.
나는 휴식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내 회사 중 어떤 것도 공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결코 없다.
나 자신에게만 책임을 진다면 무엇인가를 선택하기가 훨씬 용이한 법이다.
나는 결국 한 항공기를 찾아냈다. 그 항공기는 2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지만 15인승으로 개조된 호화 항공기였다. 주인인 다이아몬드 샴로크 사는 경영난에 처해 있었으므로 그것을 팔고 싶어 했다. 신형 727기를 구입하는 데는 대략 3000만 달러가 든다. 그러나 나는 샴로크 사가 그것을 팔고 싶어 안달하고 있으며 727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500만 달러를 제안했다. 우리는 다소 옥신각신했으나 800만 달러에 합의를 봤다. (트럼프가 약간 불리한 상황의 상대방에게서 이득을 얻어내는 그런 거 좋아함)
다음엔 무엇을?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질문의 대답을 알지 못한다. 대답을 안다면 흥미가 오히려 반감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알고 있다. 미래가 과거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떤 방침을 정하고 그것을 고수해 나가는 사람이다.
나의 관심사는 어떤 일이든지 행하는 것이다.
나와 내 인생에서 자랑거리라고는 두 가지밖에 없다.
난관을 잘 극복한다는 점과 좋은 사람들도 하여금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점이다.
나는 다시 거래, 큰 거래를 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것도 불철주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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