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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독후감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5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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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정말 오랫동안 읽었다.

여운 미쳤고...


<은퇴>

말년에 그는 과학적으로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지만, 그에게 물리학은 죽는 날까지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노력의 대상이었다. 

"정치는 현재에 대한 것이지만, 방정식은 영원에 대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오펜하이머가 연구소 소장으로 왔다. 그는 권위적이면서도 유능했다. 우아함과 날카로운 재치의 소유자인 그를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추종자가 되거나 적이 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아인슈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는 언제나 어린아이 같기도 하면서 심각하게 완고하고 강력한 순수함이 있다."


<인간 아인슈타인>

그런 열정을 만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은 그가 감정적으로 냉담하다는 명성과는 모순되는 것이었다. 마야와 마르고트 모두 나이가 들면서 남편과 사는 것보다 그와 함께 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어떠한 구속적인 관계도 잘 견디지 못했던 그는 어려운 남편이고 아버지였지만, 자신이 구속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 깨닫고 나면 가족이나 친구 모두에게 강렬하고 열정적일 수 있었다.

 

"나는 단순히 모든 면에서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을 즐기고, 대중들의 행동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 약점이나 결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모든 일을 침착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해와 더 객관적인 판단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미국 수정 헌법 제1조:
의회는 종교를 세우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새 조국에서 일종의 '무서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잃을 것이 거의 없는 나이 든 사람들은 더 많이 자제할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망명자들이 매카시 선풍을 민주주의에서 일어나는 과잉의 밀물과 썰물 중의 하나가 아니라 파시즘의 블랙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았던 것은 당연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정 능력을 가진 정치 체제에 익숙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증진이 어느 정도의 탄력을 가질 수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실망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는 뒤틀린 냉담함과 유머 감각 덕분에 심각한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는 절망한 사람으로 죽을 운명은 아니었다.

생전에 그는 담배를 미친듯이 피워댔다.


<종말>

그는 76세로 죽기 전까지 22살 연하의 요한나 판토바와 연인 관계였다.

여자관계는 like 벤자민 프랭클린...

 

위장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산책을 좋아했다. 산책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완고함에 대해서 사과하면서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위독해진 그를 찾아간 버나드 코헨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삶을 인공적으로 연장하는 것은 품위가 없다. 나는 내 몫을 했고,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나는 우아하게 떠나겠다."

 

그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했고, 고통이 너무 심해지자 잠을 자기 시작했다. 

1955년 4월 18일 새벽, 간호사는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의 독일어를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그는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침대 옆에는 이스라엘 독립기념일을 위해서 준비했던 연설문의 원고가 놓여 있었고, 방정식이 빼곡하게 쓰인 12페이지의 서류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잡히지 않는 통일장 이론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가 마지막으로 잠을 자기 직전에 쓴 것은 자신과 우리 모두를 우주의 법칙에 나타난 정신에 조금 더 가까이 데려다줄 것이라고 바라던 한 줄의 기호와 숫자들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인생의 마지막에 쓴 방정식


<에필로그>

전 세계의 귀빈들로 북적한 장례식을 치를 수도 있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화장장에는 12명의 사람들만이 자리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가 병적인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유골을 뿌려달라고 고집했다.

 

그가 자신의 정신적 성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자주 이야기했던 것은 호기심이었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열정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 신념의 핵심은 자연이 아무 관계도 없는 특성들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의문을 제기하는 마음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그가 종교적 느낌과 동등하다고 보았던 우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만들어냈다.
"호기심은 그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영원, 생명, 현실의 훌륭한 구조의 신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면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로 언어보다는 시각화된 사고로 표현되었다. 
"상상은 갑작스러운 환상이고 거의 황홀경에 가까운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후에 지적 분석과 실험으로 그런 직관을 확인하거나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상상에 의한 거대한 약진이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움의 한 성분이 단순성이라고 느꼈다. Like 스티브 잡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대부분의 동료들보다 훨씬 더 물리학 법칙들이 자연의 모든 것을 조리 있고 일관되게 설명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이론을 만들 때 그의 방법은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는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목표로 했고, 그에게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단순성이었다." 

어쩌면 그의 성격에서 가장 중요한 면은 독행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갈릴레오의 일에서 인식한 주제는 권위를 근거로 한 어떠한 종류의 교리에도 열정적으로 저항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기본적인 신조는 자유가 창의성의 근원이라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정의하는 간단한 식이 있었다. 창의성은 추종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요구했다. 그것은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영혼을 요구했고, 다시 "허용의 정신"을 요구했다. 그리고 허용의 기반은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아이디어나 믿음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는 겸손함이었다.

세상에는 염치없는 천재들이 많았다. 아인슈타인이 특별했던 것은 그의 정신과 영혼이 그런 겸손함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외로운 노력에서는 조용하게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자연이 만들어놓은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경탄했다.

기적이 신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성스러운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주가 이해 가능하고,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이 경탄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조화를 통해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존경의 느낌, 그런 우주적 종교가 모든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이끌어준 것이었다. 그는 "내가 이론을 평가할 때는 만약 내가 신이라면 세상을 그런 식으로 만들겠는지를 자문해본다"고 했다. 그것은 또한 자신감과 경외심이 아름답게 혼합되어 그를 우아하게 만들어준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와 밀접하게 연결된 외톨이였고, 존경심으로 채워진 독행자였다. 그래서 상상력이 풍부하고 버릇없는 특허심사관은 우주 창조주의 독심술사이면서 원자와 우주의 신비를 풀어내는 열쇠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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