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괴벨스가 궁금했는가? 지금은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우연히 나무위키에서 괴벨스에 대한 내용을 읽다가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는 어떤 특별함을 가졌길래 "선전선동의 제왕"이 되었는가?
그에 대해서 알기 위해 구매한 이 책의 국내 정발 제목은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다. 이 책은 그가 주고받은 수백 통의 서신들, 그의 문학 작품과 수필들, 기타 문서들, 소송 관련 자료들, 무엇보다도 그의 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
이 책은 제목과는 다르게 그의 선전 방법에 대한 분석이나 그러한 내용은 거의 없으며, 그냥 괴벨스 전기이다. (제목에서부터 선동을 하고 있다.)
또한 1000p가 넘는 매우 두꺼운 책이다. 내 인생에서 읽은 책 중 가장 두껍다. 읽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이 책의 내용은 괴벨스의 시점에서 본 바이마르 공화국 ~ 나치 독일 멸망까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지루할 만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경제적, 군사적 내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은데, 괴벨스가 그러한 분야에는 문외한이고 따라서 그의 서신이나 일기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군수 산업 확장으로 전 세계적 대공황을 극복한 나치 독일에게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그는 이러한 내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의 기록에는 "총통의 전쟁에 대한 결연한 태도"만이 강조될 뿐이다.
낫질 작전, 덩케르크 철수 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사건들도 자세한 내용 없이 가볍게 언급만 되며 지나간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가공할만한 재미"를 선사했는데, 사건들이 벌어진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위키에도 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며 그러한 자료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었다.
주로 정치 얘기만 하는 초중반은 꽤 지루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고부터는 밀리터리 덕후들이 왜 생기는지 알 것 같을 정도로 정말 흥미로웠다.
정치적으로도 민족주의, 볼셰비즘 등등 여러 사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모르면 흐름이 이해가 잘 안 댐...)
뜬금없지만 이 책으로 얻은 수확 중 하나는 이제 더 이상 정치인들의 행보를 이상하게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이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아 그냥 저게 쟤네 일이구나...' 싶다. 변호를 잘하는 변호사가 오래간다. 테니스를 잘 치는 테니스 선수가 오래간다. 선동을 잘하는 정치인이 오래간다. 그냥 그뿐이다.
괴벨스에 대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왜소하고 허약했으며 골수염으로 인해 다리를 절고 다녔다.
불운한 신체로 인한 끝없는 열등감,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그의 원동력이었다.
나도 신체적 열등감이 없지는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키 작고 (나무위키 피셜 165cm), 왜소하고, 평생을 발을 절며 다닌 괴벨스의 열등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솔직히 어릴 때부터 스스로 개선할 수도 없는 불운한 신체 때문에 온갖 동정과 조롱을 겪으며 성장했을 그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모범적이고 바른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말인가? 제아무리 대단한 성인군자가 와도 그와 같은 학창 시절을 겪고도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때문인지 괴벨스는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엄청나게 신경 썼으며, 엄청난 유리멘탈이었다. 가족, 애인에게 자살 협박도 자주 했고 정신이 불안정했으며 예민했다.
장애에 대한 보상 심리로 공부에 집착하여 결국 문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전후의 독일 경제 상황에서 변변찮은 직업 하나도 구하기 어려웠고, 그는 늘 가난하게 지냈다.
신체장애와는 별개로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독일이 혼란했기 때문에 부강한 독일을 만들기 위해 독일 민족이 뭉쳐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성향, 가족이 노동자 계층이기에 좌파적 반자본주의 성향은 있었지만 이때까지는 반유대 성향은 없었다.
괴벨스가 극단적인 성향에 빠져든 건 그 이후다.
여자 친구의 도움으로 은행에 취직했지만 절망적인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장사질을 하는 동료들을 보고 혐오 스택 +1
부르주아 계층이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혐오 스택 + 1
그리고 이때부터 "자본을 주무르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생기기 시작했고, '19세기의 기초'와 같은 반유대적인 민족주의 서적도 많이 읽었으며, 자신과의 교제를 반대했던 헤어진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고, 마르크스, 트로츠키와 같은 "타락한 사상가"들 또한 유대인이었던 등 여러 이유들로 인해 그는 점점 유대인들을 "절대 악"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즈음 어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오스트리아 태생 화가 지망생'이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그는 법정에서 변호를 가장한 '일장 연설'을 하면서 단숨에 정치계 스타가 되었고 괴벨스 또한 이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후 괴벨스는 고교 동창인 프리츠 프랑을 통해 나치즘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프랑의 회고에 따르면 첫 연설 때부터 군중을 휘어잡았다고 한다.
재판 사건부터 그는 이미 히틀러에게 꽂혔고, 초기 나치즘 활동을 하는 동안 감옥에 갇힌 히틀러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오히려 미스터리 같은 그에게 더욱 빠져들게 된 계기로 보인다.
어쨌든 괴벨스는 만나기 전부터 엄청난 히틀러의 광팬이었고 그와 만나고 정치 활동을 하면서 그를 자신의 꿈(독일 민족에 의한 부강한 독일)을 이뤄 줄 '메시아'로 추앙한다.
히틀러에 대한 그의 믿음은 "광신적인 수준"이었는데, 나치즘 내에서 그와 히틀러의 정치 성향은 꽤 많이 달랐지만 (괴벨스는 좌성향, 히틀러는 우성향에 가깝다.) 히틀러와 한 번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히틀러 쪽으로 기울었으며 (죽을 때까지 히틀러와 부딪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히틀러와 만난 날에는 일기에 항상 기분 좋은 표현이 있었다.
일기에 '나는 히틀러의 편이다. 히틀러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광신적 믿음, 자기기만
다음은 이 책 전체를 통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요제프 괴벨스라는 인간을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한 것만 같다.
신을 크고 강하게 만들수록, 나 자신이 크고 강해진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믿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믿음을 늘 숭배했다.
그는 일기를 매일 썼는데, 일기는 자기 합리화, 자기기만의 수단이었다.
스스로 조작한 괴벨스 폭탄 테러 미수 사건을 일기장에는 "나를 해치려는 폭탄 테러가 있었다."라고 썼다.
또, 그 자작극이 들통나 다른 신문사의 저격을 받았을 때도 일기에 "거짓말과 날조를 늘어놓는 슈테네스"라고 썼다.
그는 일기를 통해 자기 자신마저 속였던 것이다. 또한 그런 자기기만으로 인한 오류들을 무시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사악하며, 자신의 잘못은 인간을 너무 깊이 신뢰한 탓이라고 합리화했다.
항상 자기기만, 자기 합리화, 남탓을 통해 열등감을 극복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정말로 세상의 탓이기도 했고, 또한 그렇지 않았으면 어린 시절에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광신적 믿음은 그의 원동력이자, 비결이기도 했다.
덕분에 번아웃이나 두려움 없이 언제나 열심히 일할 수 있었고,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반드시 해결책이 존재한다고 믿고 끝까지 모색하였다. 그는 고난과 역경을 "신이 내린 시험"으로, 히틀러를 "섭리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전쟁 후반기, 희망이 없어 나치의 고위 간부들이 체념하고 마약에 절어가고 있을 때도 그는 언제나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선전 선동을 통해 자국민을 고무시키고 영미와 소련의 동맹을 분열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히틀러 외의 고위 인사들이 폭격으로 절반밖에 남지 않은 필하모니 홀에서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도, 괴벨스는 오데르 강 전선으로 가 담배와 술 등을 나눠주며 연설을 했다.
괴벨스? 나? 일론 머스크?
괴벨스에게서 어느 정도는 나 자신을 보기도 했다.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히틀러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머스크를 숭배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신체적 열등감이 있는 것도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어느 하나 잘난 것 없어 공부로 극복하려 하고 보상 심리로 큰 야망을 가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점은 나는 자책을 하는 편이라는 것.
현재 광동 프릭스 LOL 팀 감독인 씨맥이 예전 인터넷 방송할 시절에 했던 말이 있는데, '남탓을 하면 자기 발전을 할 수 없다. 진짜로 남의 탓이더라도 내 탓을 해야 된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지금까지 내 머리에 크게 남았다.
하지만 자책의 가장 큰 단점은 자기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자책이 내 소심함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미 남탓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좀 남탓을 해볼까? 자기기만을 해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또한 일론 머스크와 관련해서 둘의 공통점은 어쨌거나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항상 매우 열심히", "분석적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역시 노력은 모든 성공의 기본이다. 그 유명한 '총력전 연설' 전에도 그는 거울을 보면서 효과적인 제스처들을 연구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어떤 일도 결코 우연에 맡겨두려 하지 않았다.
이 문장을 보고 일론 머스크 전기에 있던 문장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고객은 서너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면 어떤 것을 추천하고 싶은 지 묻는다. 하지만 머스크는 각 선택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뿐, 추천해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머지 이야기들
나치당의 "합법적 권력 장악"이 오로지 그들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대공황 등 모든 내∙외부의 상황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치당이 집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언제나 큰 성공에는 큰 행운이 따른다는 것. 그것을 잡은 것은 그들의 능력 덕분이긴 하지만.
+머스크도 닷컴 버블의 물결을 잘 탄 사람 중 한 명이다.
괴벨스는 전쟁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히틀러를 여러 번 설득하려고 하였다.
이는 본인이 군사에 문외한이라는 것, 그리고 전쟁 시 본인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을 어느 정도 걱정했기 때문도 있어 보인다. 또한 머스크처럼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괴벨스는 나치당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의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였다. 사실 히틀러는 괴벨스에 비하면 유대인에 대해 어느 정도 온건한 태도를 취했는데, 유대인 학살을 허가하도록 히틀러를 꾸준히 설득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괴벨스였다.
그에게 절망을 안겨준 다리 장애가 그가 선전 장관으로 오르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다. 내 추측인데, 그의 뛰어난 연설 능력도 있지만 "절름발이 박사님"이라는 이미지가 남들과 차별화되고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믿음의 크기가 힘의 크기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믿음을 가지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고평가 했다.
히틀러 암살 사건에서 회의실에 폭탄가방을 갖고 들어간 슈카우펜베르크에 대해서는, 비록 그가 "섭리의 도구"를 없애려 했지만 일기장에서 그의 의지와 결단을 칭찬하였다. 또한 아내 마그다와 바람을 피웠던 자신의 부하 한케에게도 그의 평소 용기와 책임감만큼은 높게 평가하였다.
괴벨스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전 빈털터리 시절에도 여자친구가 없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의 신체 조건을 생각하면 이건 좀 신기하다. 어케했냐;;
괴벨스는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이고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태생부터 다른" 그런 천재들의 이야기보다는 더 공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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